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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조경제, 독일의 '히든 챔피언' 주목하라/유지수 총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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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독일의 통일을 배우려는 열기도 더욱 강해지는 분위기다. 독일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단지 통일만은 아닐 것이다. 독일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강자다. 경제대국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되는 것이다. 한국의 화두 중 하나가 창조경제다. 창조경제의 모델을 굳이 나누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국과 미국 같은 벤처모델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신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삼은 벤처가 우후죽순으로 나온다. 벤처를 대기업에 팔아 대박을 낸다. 당연히 젊은 대학생과 연구생들이 주변의 성공을 보고 벤처의 꿈을 꾸게 된다. 대학이 벤처의 모태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는 독일 모델이다. 독일 경제는 강한 중소기업이 이끈다. 독일의 경영학자인 헤르만 지몬은 1996년 강한 중소기업인 ‘히든 챔피언’을 조사했다.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 1, 2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을 찾아낸 것이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대개 가격보다는 성능과 품질로 승부를 겨루고 있다. 또 제조업 분야에서 차별화된 기술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2012년 조사에 의하면 독일에는 1307개, 미국엔 366개, 일본엔 220개, 오스트리아엔 128개의 히든 챔피언이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합하면 무려 1400개 이상의 히든 챔피언이 독일어 문화권에 있다. 독일이 2000년 초 경제가 정체돼 2% 성장을 할 때도 이들 기업은 8% 이상의 성장을 이뤘다. 국가경제가 어려울 때도 독일의 중소기업은 더 강한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히든 챔피언이 나오는 독일의 중소기업, 즉 미텔슈탄트(Mittelstand)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130만 명 이상의 독일 청년이 매년 미텔슈탄트에서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가 청년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독일은 예외다. 미텔슈탄트가 고용을 창출해주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에서 벤처모델이 중요하다. 그러나 독일과 같은 히든 챔피언 모델도 중요하다. 한국 창조경제의 한 축은 히든 챔피언 모델이 돼야 한다. 벤처모델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히든 챔피언 모델은 약(弱)을 강(强)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강한 기업으로 만드는 데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부품을 대기업이 사주지 못하는 것이다.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판매량이 수년간 수백만 대에 이르는 제품도 있다. 많이 팔면 대박이 나지만 많이 판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쪽박을 차게 된다. 당연히 검증 안 된 기술과 부품을 무턱대고 사줄 수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부품을 안 사주니 히든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영원히 약한 기업이니 좋은 인력을 유치할 수 없으며, 인력이 없으니 기술개발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주는 인프라가 있다. 바로 산학협력 인프라다.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을 통해 검증을 해주는 대학이 히든 챔피언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미텔슈탄트가 제어용 프로세서를 개발했다면 이를 영하 30도와 영상 140도, 습도 99%, 고도 2000m 등과 같은 극한적 상황에서 기능을 발휘하는지 가상실험을 통해 검증해준다. 가상공간에서 온갖 경우의 수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런 검증 덕택에 대기업은 미텔슈탄트의 기술을 믿고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기업의 경쟁력이 뛰어난 이유는 가상공간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신제품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증을 통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면서 품질과 기능의 신뢰성도 높이고 있으니 한번에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이다. 한국에도 가상공간 검증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특히 대학이 중소기업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검증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이를 운영할 수 있는 교수와 대학원생이 필요하다. 한국 대학의 설비와 장비는 대부분 SCI 외국 논문을 발간하는 데 적합한 인프라다. 연구 인프라는 준비돼 있으나 산학협력 인프라는 매우 취약한 게 현실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산학협력을 권장해도 중소기업이 대학을 찾을 리 없다. 대학에서 양산한 연구논문이 중소기업에는 단지 종잇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독일식 산학협력 모델을 배워야 한다. 중소기업 기술의 신뢰성을 확보해주는 검증데이터를 대학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기술이 대학의 검증을 거쳐 대기업의 구매로 이어지는, 히든 챔피언 탄생의 선순환 구조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통일의 대박과 한국 히든 챔피언의 대박이 동시에 터졌으면 한다. 원문보기 :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4/04/13934961.html?cloc=olink|article|default 출처 : 중앙일보 기사보도 2014.04.04 0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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