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중앙선데이] ‘쓴소리 학자’ 최승로 재상 앉혀 국가 틀 잡다/박종기(국사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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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6대 국왕 성종(成宗·981~997년 재위, 960~997년)에 대해 고려 후기 유학자 이제현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경종의 사촌 … 두 살짜리 조카 제치고 즉위 성종 재위 중 최대 위기는 993년(성종12) 거란의 고려 침입이다. 조정에선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 떼어주고 화해하자는 이른바 ‘할지론(割地論)’이 제기되었다. 학자 출신 관료들이 성종에게 그렇게 건의했다. 그러나 서희(徐熙)는 “적과 만나 그들의 의도를 살핀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성종을 설득했다. 이어 서희는 직접 거란 진영을 찾아가 사령관 소손녕과 담판했다. 그는 거란의 고려 침입이 고려와 송의 관계를 단절하려는 데 있음을 파악하고 관계 단절의 대가로 압록강 이동 지역을 확보했다. 서희는 화풍을 강조한 유학자 출신의 관료집단과 달리 고려의 전통문화를 강조한 인물이다. 고려 고유의 전통문화를 당시엔 ‘토풍(土風)’ 혹은 ‘국풍(國風)’이라 했다. 서희는 국풍파의 대표격이다. 성종은 즉위 직후 서희와 같은 고려의 전통을 중시하는 관료집단을 개혁정치의 또 다른 우군으로 끌어안아 서희에게 오늘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병관어사(兵官御事)의 벼슬을 내렸다. 화풍을 중시한 성종은 이렇게 자신과 성향이 다른 정치인도 받아들였다. 가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훌륭한 재목이라면 발탁하여 미래 정치의 자산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서희와 같이 거란의 침입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왕조를 위기에서 구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국풍파 관료였던 이지백(李知白)은 거란의 침입 앞에서 마치 적전 분열처럼 비칠 정도로 과감하게 할지론과 성종의 화풍정책을 비판했다. “가볍게 토지를 떼어 적국에 주기보다 선왕(先王태조)이 강조한 연등(燃燈)·팔관(八關)·선랑(仙郞) 등의 행사를 다시 시행하고 다른 나라의 법을 본받지 않는 것이 나라의 보전과 태평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고서 하늘에 고한 뒤 싸울 것인가 화해할 것인가를 임금께서 결단해야 합니다.” 성종은 이지백의 말을 따랐다. 성종이 화풍을 좋아하고 사모하자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지백이 이같이 말했던 것이다.(『고려사』 권94 서희 열전) 이지백은 팔관회·연등회의 전통 의례를 통해 민심을 결집시키는 것이 거란의 침입을 막는 지름길로 인식했다. 화풍을 추구한 성종의 정책을 좋아하지 않는 민심을 등에 업고 나온 발언이었다. 또 다른 국풍파 관료 한언공도 성종이 중국의 화폐제도를 도입하려 하자 제동을 건다. “고려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성종을 설득해 중단시킨 것이다. 서희·이지백·한언공은 화풍 중심의 일방적 제도 개혁의 속도를 조절할 것을 성종에게 건의하고, 고려의 전통문화인 국풍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들이다. 성종은 이들의 건의를 귀담아 듣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종은 이념 성향이 다른 인물들을 써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만든, 독특한 인재 등용책을 구사한 군주였다. 그렇다고 다양한 세력의 틈바구니에 휘둘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능한 군주도 아니었다. 그는 호족 중심의 낡은 정치와 관료 시스템을 물갈이하려 했던 광종의 개혁을 완성하는 것을 통치의 목표로 삼았다. 화풍정책을 계승해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용함으로써 고려의 정치·경제·군사 제도를 개혁해 왕조의 체제를 새롭게 하려 했다. 인적 청산에 집중했던 광종과는 이런 점에서 달랐다. 위기의 시대에 소외된 정치세력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종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여 실천했다. 화풍 성향의 유교 관료집단과 국풍 성향의 관료집단을 함께 끌어안는 조화와 균형의 리더십으로 정국을 운영했다. 나라 안팎에 현안이 발생하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내고 왕조의 면모를 일신시켜 나갔다. ‘성종’이란 칭호에 걸맞은 군주였던 셈이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0607 출처 : 중앙선데이 기사보도 2013.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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