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동아광장/안드레이 란코프]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야 하는 이유 / (교양대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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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사실이 러시아 당국자에 의해 확인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 여부는 미정이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한미 동맹을 고려해 신중한 선택을 하려는 듯 보이는데 불참할 경우 청와대는 남북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물론 러시아와 북한 모두 자국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계획하지만 이 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북한의 미래에 기여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목적은 미국과 유럽이 실시하는 러시아 고립화 정책을 무력화하고, 서양에 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북한의 목적은 러-미 갈등을 이용해 러시아에서 원조를 얻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희망은 잘못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유익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작년부터 우크라이나 위기 및 크림 반도의 합병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과 대립한 러시아가 옛 소련과 유사한 세력이 됐다는 지적이 세계 언론에서 제기된다. 대(對)중국 경제의존도 심화를 우려하는 북한 엘리트들은 이 같은 주장을 과신하면서, 러시아에서 원조와 특혜무역 조건을 얻어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에 대항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정은이 30여 년 동안 중소 대립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무조건적인 원조를 양쪽에서 받아냈던 김일성의 정치노선을 모방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환상이다. 옛 소련과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사이에 공통점이 없진 않지만, 차이점이 더 많다. 그중 하나는 대외 원조에 대한 태도다. 옛 소련과 달리 러시아는 자국 위신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1991년 이후 옛 소련에 속하지 않았던 나라가 러시아에서 많은 원조를 받은 적이 없다. 러시아는 자신의 영향권으로 여기는 옛 소련 영토가 아니면 외교로 돈을 낭비하기보다 외교를 통해 돈 벌 기회를 만들고 있다. 최근의 루블화 폭락과 유가 하락으로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질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원조를 주는 것보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수익을 얻는 투자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철도 건설, 광물 개발 등을 통해 러시아는 그냥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득을 기대할 것이다.
또 전망이 밝은 러-북 프로젝트는 대부분 철도 연결이나, 나선을 통한 러시아의 석탄 수출 등과 같이 남한이 참여하는 사업이다. 남북 관계에서도 러시아가 중개인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가는 것을 망설이는 데는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압력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한미 동맹을 고려하면 미국의 의견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뿐만 아니라 근래 남북 관계 분위기를 보면 설사 대통령이 가더라도 뚜렷한 성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렇다 해도 조만간 개최될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러시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땅에서 두 번이나 열렸기에 세 번째 정상회담을 북한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러나 북한은 서울 등 남한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제3국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좋겠지만 북한이 보기에 최근 외교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중국은 바람직한 장소가 아니다. 물론 일본도 안 된다.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정상회담을 러시아에서 개최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북한 정권의 희망과 달리 러시아는 원조 제공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무르익을 경우 러시아는 믿을 만한 중개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경협에 기여할 수도 있는 나라다.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원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20150327/703574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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