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50년대 커피집 무대서 영국 록 태동 … 지금은 명판만 남아 / 조현진(미래기획단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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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록밴드의 미국 공습을 뜻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1964년 비틀스의 미국 순회공연과 음반차트 석권으로 시작된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로큰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정표로 꼽힌다. 영국 로큰롤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명소들을 찾아가 록음악의 원류를 음미해본다. 지난해 중앙SUNDAY에 연재됐던 ‘팝의 원류를 찾아서’의 후속이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는 로큰롤의 암흑기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군 입대, 제리 리 루이스의 혼인 스캔들, 리틀 리처드의 종교인 변신 등으로 초기 로큰롤 선구자들은 무대에서 그리고 관객에게서 자의반 타의반 멀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1959년 2월 3일 버디 홀리마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로큰롤은 죽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미국 출신의 로큰롤 1세대들이 남긴 공간을 영국 출신의 록밴드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른바 빅4인 비틀스, 롤링 스톤스, 후, 킹크스를 앞세운 영국 밴드들이 미국 음악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꼽힌다.
관광객 위한 로큰롤 체험 관광프로그램 영국은 미국만큼 풍부한 로큰롤 역사가 있지만, 비틀스를 배출한 리버풀을 제외하면 미국처럼 로큰롤 관광명소 개발이 활발하지 못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로큰롤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왕실문화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아닐까. 레드 제플린이 처음 결성돼 리허설을 한 장소도 소호다. 지금은 차이나타운 내의 중국 식당이 됐다. 영국 로큰롤 초기의 전설적인 밴드 야드버즈가 해체되면서 밴드를 끝까지 지킨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새 멤버를 모은 직후였다. 보컬로는 로버트 플랜트가 영입됐는데 지미는 원래 테리 라이드라는 보컬을 원했으나 그가 사양했다. 테리는 훗날 하드록에서 큰 획을 긋게 되는 또 다른 밴드인 딥 퍼플 결성 때도 보컬로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이 역시 거절해 ‘가장 운 없는 보컬리스트’로 회자되곤 한다.
음악인 모이던 ‘카나비’는 패션 거리로 소호 서편에 패션 1번지 카나비 스트리트가 있다면 동편에는 악기 1번지인 덴마크 스트리트가 있다. 더 킹크스가 일찍이 그들의 곡에서 “어디인지 모르면 귀와 코를 따라가라 / 발 박자 맞추는 소리에 온 거리가 진동한다”고 재치 있게 표현한 바로 그 거리다. 지금은 기타 전문점이 된 리젠트 사운드는 과거 녹음 스튜디오였는데, 롤링 스톤스가 데뷔 음반을 녹음한 장소로 늘 관광객들로 꽉 차 있다. 이곳에서 연습하다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다”는 주변 항의에 쫓겨난 음악인도 있었으니 바로 지미 헨드릭스다.
유명 음반 표지가 촬영된 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오아시스의 1995년 음반이자 이들의 글로벌 출세작인 ‘모닝 글로리’ 음반 표지는 버윅 스트리트에서 촬영됐다. 밴드 리더 노엘 갤러거가 원래 등장하려 했으나 당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음반 디자이너가 대신 등장(앨범 표지에서 등지고 있는 사람)했다. 버윅은 오랫동안 런던 내에서 제법 괜찮은 음반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고 아직도 영업 중인 곳들이 있어 음악팬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많다. 가수 엘튼 존은 록스타가 된 이후인 70년대 초까지 이곳에 있던 뮤직랜드 음반점에서 일해 손님들을 놀라게 했다. 소호 중심에는 ‘소호 스퀘어’로 명명된 작은 공원이 있다. 싱어송라이터 커스티 맥콜은 이 공원을 자신의 노래로 남겼고 그녀가 사망한 뒤 공원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벤치도 생겼다.
수 많은 라이브 바·식당에 록의 역사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해리 닐슨이 소유했던 커즌 스트리트의 한 아파트는 영국 로큰롤에서 매우 슬픈 장소로 기억된다. 해리는 자신이 런던에 없을 경우 이 아파트를 지인들에게 곧잘 빌려줬는데 74년 7월 29일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마마 카스가 런던 공연 후 이곳에 머물다 숨졌다. 그녀 나이 32살이었다. 햄 샌드위치를 먹다 숨이 막혀 사망했다는 첫 보도는 나중에 오보로 밝혀졌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오보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4년 뒤인 78년 9월 7일, 광기의 드럼 연주 스타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후(The Who)의 키스 문은 폴 매카트니가 초대한 파티에 갔다 돌아온 뒤 마마 카스가 숨진 같은 침대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진다. 당시 32살. 이 사건 이후 해리는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런데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 준비위원회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폐막식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 주인공으로 후를 선정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망한 지 34년이 지난 키스 문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 더 후는 65년 발표한 그들의 대표곡 ‘마이 제너레이션(My Generation)’에서 “난 늙기 전에 죽고 싶어(I Hope I Die Before I Get Old)”라는 파격적이고 상징적인 가사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더 후의 매니저는 올림픽 준비위에 “키스는 이 가사에 충실했고 지금은 한 화장터에서 쉬고 있다”고 답해줬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출처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5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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