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기념비 없어도 … ‘비틀스 건널목’ 찾는 순례자 매일 수천 / 조현진(미래기획단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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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틀스! 영국 리버풀 출신의 이 4인조 밴드는 1962년 10월 5일 발표한 첫 싱글곡 ‘Love Me Do’와 함께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이듬해 1월 11일 선보인 싱글곡 ‘Please Please Me’의 성공과 함께 로큰롤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여세를 몰아 그들의 첫 정규 음반이 될 ‘Please Please Me(63년 3월 22일 발매)’ 녹음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비틀스는 고향인 리버풀을 떠나 수도 런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영화 찍으며 배필 만난 조지 해리슨 ‘A Hard Day’s Night’는 음악 영화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 음악방송 MTV가 개국하기 수십년 전에 뮤직비디오 탄생의 밑바탕이 된 영화로도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화 외적으로도 로큰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은 이 영화 촬영장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여성모델 페티 보이드에게 첫 눈에 반한다. 조지의 첫 데이트 신청을 당시 약혼자가 있던 페티는 거절하지만 결국 둘은 66년 1월 결혼한다. 비틀스의 ‘애비 로드(Abbey Road)’ 음반에 실린 ‘Something’은 조지가 페티를 그린 곡이다. 페티는 “비틀스 ‘Help’음반의 ‘I Need You’도 조지가 나를 위해 쓴 곡”이라 밝혔다. 둘의 결혼 이후 페티에 반한 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이었다. 에릭은 비틀스의 음반에 참여해 기타를 연주하고 조지가 숨진 순간까지 돈독한 우정을 나눴지만, 페티를 향한 마음만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릭은 자신이 이끌던 밴드 ‘데릭 앤드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가 발표한 ‘Layla’를 통해 절친의 여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로큰롤의 형식을 빌려 전세계에 알린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록 발라드 ‘Wonderful Tonight’도 에릭이 페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곡이다. 둘은 79년 결혼했다가 10년 뒤 헤어지게 된다. 이때 에릭의 심경을 담은 곡이 89년 발표한 ‘Old Love’였으니 페티가 영감을 준 로큰롤 명곡들은 따로 음반으로 발매해도 될 정도다. 페티의 동생 제니는 한때 록밴드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의 드러머 믹 플릿우드와 결혼했었다. 영국의 포크록 가수 도노반이 불러 국내서도 사랑받은 곡 ‘Jennifer Juniper’는 바로 이 제니를 그린 곡이다. 이들 자매처럼 로큰롤계를 뒤흔들며 수많은 곡에 영감을 준 자매는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울 듯싶다.
비틀스 불화 시작된 몬테규 스퀘어 그러나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68년부터 이 집에 살았던 한 커플에 집중되는데 바로 존 레논과 오노 요코다. 둘이 만난 이후 처음 동거한 곳으로, 요코의 등장과 함께 비틀스 멤버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 시점도 이 무렵이다. 둘은 이 집 안에서 전라(全裸) 상태로 한 음반 표지를 촬영하는데 로큰롤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음반 표지로 꼽히는 ‘Two Virgins’의 표지였다. 후에 존과 요코 커플은 이 집에서 대마 소지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존이 런던에서 살았던 집 중 유일하게 기념 명판이 붙어있는데, 제막식이 열린 2010년에는 이 곳에 대한 향수를 차마 잊을 수 없었는지 요코 자신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폴이 사진작가 출신의 린다 매카트니와, 그리고 링고가 첩보영화 007시리즈 본드걸 출신의 여배우 바바라 바흐와 결혼한 장소도 매릴레본 지역이다. 린다는 98년 숨질 때까지 폴의 공연에서 키보드를 치며 무대를 함께 했는데, 오는 11월에는 그녀가 남긴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에서의 첫 사진전이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링고 결혼식(81년 4월 27일)은 존 레논이 미국 뉴욕에서 암살(80년 12월 8일)된 이후 남은 비틀스 멤버들이 공개적으로 처음 모인 자리여서 당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비틀스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살다가 숨진 스테포드가의 집은 수많은 기자회견과 행사가 열린 곳이다. 취재진과 팬들을 피해 비틀스 멤버들이 종종 뒷문을 이용해 몰래 빠져나와 즐겨 찾던 바 ‘Horse and Groom’은 지금도 영업중이다. 존이 요코의 개인전에 초대받아 둘이 처음 만난 매손스 야드 소재의 인디카 갤러리가 있던 장소도 비틀스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둘의 만남이 결국 비틀스의 해산을 초래했다는 원망은 오늘날에도 계속되면서 이 장소를 저주하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이 갤러리가 시작될 때 재정적으로 지원한 사람이 다름 아닌 폴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영국 도서관엔 비틀스의 흔적 보관 런던 비틀스 관광에서 생각하지 못한 큰 즐거움은 영국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 존 리트블래트 갤러리는 영국 도서관이 가장 아끼고 자랑하는 200여 점의 보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영국 대헌장(Magna Carta)과 1455년의 구텐베르크 성서 등이 포함돼있다. 여기에는 존이 그의 첫 아들 줄리안의 생일 카드 뒷면에 쓴 가사나 조지 해리슨이 폐지 뒷면에 쓴 곡 등 7점의 진귀한 품목이 전시돼 있어 비틀스 팬들이라면 놓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곳이다.
전 세계 아티스트 영감의 원천된 애비 로드 69년 8월 8일 오전 11시 35분. 비틀스 멤버 4명은 음반 표지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 바로 앞에 위치한 횡단보도에 모였다. 경찰이 차량 통행을 제한한 시간은 단 10분. 이 짧은 시간에 존 레논의 친구인 사진작가 이아이언 맥밀란(Iain Macmillan)은 그의 하셀블라드 카메라로 6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 중 다섯 번째로 찍은 사진이 로큰롤 역사상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닌 음반 표지로 남게 됐다. 폴이 맨발로 걷고 있는 등 음반 표지를 놓고 나온 다양한 추측, 해석과 상상력은 여전해서 지금까지도 그의 사망설이 제기되고 있다. 사망설을 일축하듯 폴은 그의 1993년 라이브 음반을 ‘Paul is Live’로 이름 짓고 음반 표지도 자신이 애비 로드 횡단보도를 건너는 문제의 장면을 썼다. 이후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장소를 활용하거나 영감을 얻은 음반 표지를 선보였다. 2011년 6월에는 K팝 아이돌 샤이니가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애비 로드에는 화려한 박물관이나 거창한 기념관 심지어 그 흔한 기념비도 하나 없다. 스튜디오는 지금도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 개방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아 담에 낙서를 남기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기념 사진을 찍고 기뻐한다. 애비 로드 스토리의 힘이다. 비틀스에 대한 경의다. 로큰롤의 매력이기도 하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5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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