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초기 비틀스, 5파운드 받고 ‘캐번 클럽’서 점심 공연 / 조현진(미래기획단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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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이름도 ‘존 레넌 공항’으로 바꿔 오노는 정식 개명 행사 때 다시 공항을 찾았다. 이때 2m10㎝ 높이의 존 레넌 동상 제막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리버풀 출신 조각가 톰 머피의 작품인데 행인의 발걸음이 뜸한 곳에 세워진 점이 아쉽다. 공항 외부에는 비틀스의 1966년 히트곡이자 이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옐로 서브마린’ 대형 조각상이 2005년 설치됐다. 공항 로고는 존 레넌의 자화상이다. 공항 슬로건으로 비틀스 해산 뒤 레넌이 발표한 ‘Imagine’의 가사 중 ‘Above Us Only Sky(우리 위로는 오직 하늘만이)’가 적절하게 선택됐다. 공항 옥상에도 이 슬로건이 써져 있는데 비행기 내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시내로 들어와도 비틀스 흔적은 큰 노력 없이 쉽게 발견된다. 그중 하나가 도로를 달리는 비틀스 관광 상품 차량들이다. 비틀스의 히트곡 제목에서 따온 ‘Magical Mystery Tour(마법의 신비한 투어)’가 대표적이다. 공항 슬로건에서 관광 상품명까지 비틀스가 남긴 곡들과 가사가 이렇게 곳곳에서 긴요하게 사용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110개 객실을 비틀스 주제로 꾸민 호텔 캐번 쿼터 주변에는 비틀스 관련 기념품점도 많다. 30년째 영업 중인 ‘더 비틀스 숍(The Beatles Shop)’ 입구 위에 있는 비틀스 동상은 리버풀시에서 처음 만들어진 비틀스 동상이다. 이 상점은 급한 전화를 걸어야 했던 비틀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가 어느 날 불쑥 들어와 상점 전화를 빌려 쓴 일화를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리버풀 명예의 벽(Liverpool Wall of Fame)’은 리버풀 출신으로 영국 음악 차트 1위에 오른 아티스트와 해당 곡들을 소개하고 기념하는 벽이다. 2001년 3월 14일 제막식 때는 리버풀 출신으로 첫 1위 곡을 배출한 리타 로자(Lita Roza)가 참석했다. 비틀스의 첫 히트곡인 ‘Please Please Me’가 없어 의아해하는 팬이 많은데, 이 곡은 1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명예의 벽 기준으로 사용한 ‘레코드 리테일러(Record Retailer)’ 차트에는 2위에 머물러 제외됐다. 그래도 다른 비틀스 곡이 17곡이나 올라 있으니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84년 문을 연 ‘캐번 워크스(Cavern Walks)’는 패션 백화점인데, 지하에 비틀스 멤버 4명의 동상이 있어 특별한 기념일이면 팬들이 남긴 꽃으로 뒤덮인다. 입구에 있는 장미와 비둘기 조각상은 존 레넌의 첫 아내인 신시아 레넌(Cynthia Lennon)의 작품으로 장미는 존이 가장 좋아한 꽃을, 비둘기는 존이 즐겨 이야기한 평화를 상징한다.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유명한 라이브 클럽으로 꼽히는 ‘더 캐번(The Cavern)’은 57년 1월 16일 재즈클럽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57년 8월 7일, 리버풀 출신으로 당시 17살이던 청년 존 레넌이 이끌던 밴드 ‘더 쿼리맨(The Quarrymen)’이 무대에 섰다. 후에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이라는 이름의 청년들이 합세하면서 밴드는 진화한다. 60년대 들어 캐번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로큰롤 연주를 보여주는 런치세션 공연이 인기였는데, 61년 2월 9일 목요일 점심시간에 5파운드(약 8500원)를 받고 무대에 오른 밴드가 있었다. 바로 비틀스였다. 비틀스는 이 런치세션 무대에 모두 151번 오르는데, 61년 11월 9일 이 공연을 지켜본 한 남자가 있었다. 비틀스의 매니저로 활동하게 되는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이었다. 두 달 뒤 비틀스는 브라이언과 정식 계약을 맺는다. 비틀스의 운명이, 그리고 로큰롤의 역사가 바뀌는 장면이다. 캐번에서 비틀스는 63년 8월 3일까지 총 292차례(일부 기록은 274번)에 걸쳐 무대에 오른다. 비틀스를 배출한 유서 깊은 캐번은 73년 5월 27일 문을 닫는다. 캐번이 들어섰던 창고 건물은 도시 개발 계획과 함께 완전히 헐려 많은 리버풀 시민과 비틀스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84년 캐번이 입주했던 창고 건물터에 한 개발업자가 위에 언급한 ‘캐번 워크스’를 준공하면서 리버풀에서 잊혀져 가던 캐번은 다시 존재를 드러냈다. 캐번의 로큰롤 의미와 정신을 계승하고자 비록 캐번이 원래 들어섰던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최대한 가까운 지점에 본 모습을 복원해 문을 연 공연장이 지금 관광 명소이자 캐번의 적자(嫡子) 인 ‘캐번 클럽(Cavern Club)’이다. 원 캐번의 공간 50% 정도가 활용됐고, 주소는 옛 캐번의 주소지인 ‘10 매튜 스트리트’의 사용이 허가돼 지금도 사용된다. 척 베리, 롤링 스톤스도 거쳐간 ‘캐번’
캐번 클럽의 소유자가 94년 개업한 ‘캐번 퍼브(Cavern Pub)’는 캐번 클럽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또 다른 라이브 클럽으로, 주로 캐번 전성기 때 출연했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공연이 기획된다. 클럽 입구에 마련된 ‘캐번 명예의 벽(Cavern Wall of Fame)’은 캐번 클럽이 문을 연 지 40주년인 97년 모습을 드러냈다. 벽돌 하나하나에 아티스트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캐번이 영업한 57년부터 73년 사이에 이곳 무대에 섰던 아티스트 1801명의 이름이다. 비틀스는 물론 척 베리나 롤링 스톤스 등 알 만한 아티스트는 모두 거쳐 간 곳이 캐번이었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명예의 벽 앞으로는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다름 아닌 존 레넌이다. 동상 제막식 때는 존의 오랜 친구이면서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한때 관리했던 가수 빌리 크레이머(Billy Kramer)가 제막 행사를 진행했다. 캐번은 공연장으론 뜨거웠지만 주류를 판매하지 않아 공연장을 찾은 많은 아티스트는 공연 전후에 인근 ‘더 그레이프스(The Grapes)’나 ‘화이트 스타 (White Star)’ 등에 들러 술을 주문하곤 했다. 이 중 한 밴드가 비틀스였는데, 단지 이 사실 하나 때문에 이곳들은 명소가 됐다. 업소들도 비틀스가 한때 단골이었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는데, 밀려오는 손님들만 봐도 비틀스의 인기를 느낄 수 있다. 더 그레이프스는 비틀스의 첫 드러머였던 피터 베스트(Pete Best)가 밴드에서 해고된 날 눈물의 술잔을 비운 장소였다는 사실 때문에 로큰롤 역사에서도 주목 받는 장소가 됐다. 작은 스토리 하나하나가 모인 스토리텔링의 힘은 캐번 쿼터를 리버풀의 관광 명소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고해지는 관광 명소로서의 입지는 캐번 쿼터를 비틀스 성지로 격상시키고 있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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