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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통상임금 혼란.갈등, 이젠 끝내야 / 류재우(경제학과) 교수

류재우 / 국민대 교수·경제학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은, 경제 주체가 지켜야 할 규칙(rule)을 정하고 또 심판자 역할을 하는 것, 즉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넓은 의미의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 효율성이 훼손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혼란과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초과근로나 연월차 휴가에 대한 수당이 달라진다. 행정부는 1988년에 통상임금을 ‘1임금지급기 내(1개월마다 지급되는) 임금’으로 한정했다. 이후 노사 모두 ‘그 지침’을 게임의 규칙으로 받아들이고 그 틀 안에서 자발적인 계약을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법원은 1임금지급기를 초과해 지급된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들을 내왔고, 행정부의 예규를 충실히 따른 기업들은 법 위반자가 됐다. 축구협회가 오프사이드 규정이 없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뛰었는데, 심판으로부터 파울 판정을 받은 격이다.

행정부 지침이 사법부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면 정부는 신속히 입법적인 개선을 통해 다툼이 있는 부분을 정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통상임금 문제는 근래에 노사 갈등의 주요 요인이 됐다. 정부가 규칙을 명확히 제시하는 역할을 다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갈등이다.

2013년 말,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사건에 대해 전원합의체를 열고 통상임금성에 대해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급여 항목의 명칭, 지급 주기와 상관없이 정기성·일률성과 함께 고정성을 갖는 상여금이나 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제한적이지만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됐다. 하지만 기업들은 과거의 초과수당 등에 대해 신의칙(노사합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이 인정돼 소급지급 의무를 면하게 됐다.

대법원 판결은 노사관계의 관행과 기업 부담을 고려한 고뇌의 산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양한 임금체계 특성을 아우르는 정도의 명확한 기준을 세워 혼란을 끝내지는 못했다.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하급심 판결들이 이어진 원인이다.

한 예로 적자 상태인 공기업에는 소급분 지급 판결이 내려졌다. 르노삼성차 사건에서는 고정성이 없다고 인식됐던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현대차의 유사 사건에 대한 1심 판결도 가까운 시일에 나올 예정이라 한다. 정기 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된 것이므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회사 측의 주장이지만, 최근 하급심의 판결 경향을 보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어찌 됐든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항소와 상고로 이어질 사안이라 노사관계의 혼란도 염려된다.

임금은 근로에 대한 보상과 인센티브 부여의 기능을 한다.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로 소급 지급하는 금액은 그런 기능과는 관련이 없다. 사법적 해석의 변경에 따라 사후적으로 얻게 된 횡재(windfall)일 뿐이며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은 가치 창출 없이 자산의 이전만 결과하는 지대추구 행동으로 사회적 관점에서 낭비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은 우선 사법부의 명확하고도 일관된 판결을 통해 조속히 진화돼야 한다. 동시에, 애초에 그 혼란이 입법 미비에서 비롯된 일인 만큼 근본적인 해결도 산업 현장에 맞게 법규를 정비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규칙 제정 및 해석자,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더 이상의 분쟁과 비효율을 막아야 한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11401033711000001

 

출처 : 문화일보 | 2015년 01월 14일(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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