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항저우 임정 기념관 탐방 / 국민대 '임정 루트 탐방단'

ㆍ항저우 대한민국임정청사 자오성수 관장
ㆍ“한국 독립기념관 자료 협조에 감사… 후대들의 역사교육장 되도록 노력”

 

유랑 생활이 숙명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 이후 더욱 심해진 감시와 검거를 피해 임정 요인들은 중국 상하이(上海)를 떠나 항저우(杭州)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항저우 임정 3년6개월은 시련기였다. 국무회의를 열고 독립 관련 인쇄물을 펴내면서 독립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시작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광복 70주년인 올해 항저우 임정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9월 항저우 임정 청사 터를 ‘제1차 국가급 항일전쟁 기념시설·유적 명단’ 80곳에 포함시켰다. 항저우에서 국가급 유적으로 지정된 곳은 한국 임정 청사가 유일하다. 국무원은 지방정부에 유적 관리를 강화하고 역사적 의미와 현실적 의의를 재조명할 것을 지시했다.

지난 14일 국민대 ‘임정 루트 탐방단’과 함께 위상이 달라진 항저우 임정 기념관을 찾았다. 항저우시 창성로(長生路) 후볜춘(湖邊村) 23호에 자리한 기념관은 421㎡ 규모의 2층 건물로 1, 2층 모두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임정 수립 과정과 요인들의 활동 내용을 글과 사진, 영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임정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국가급 유적 지정에 대한 기념관 측의 소회는 남다르다. 경향신문과 만난 자오성수(趙盛姝) 관장(사진)은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한국 독립기념관이 전시 자료 등을 협조해주고 있다”며 “후대들이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애국교육의 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기념관뿐만 아니라 한국대사관 측도 사전에 국가급 유적 지정 소식을 전해듣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항저우 임정 청사 복원은 2000년 후볜춘 지역 정비공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저우시가 과거 이곳에 임정이 있었던 것을 감안해 청사를 복원키로 결정한 것이다. 2002년 8월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어 기념관 설계와 거주민 이주 등을 거쳐 2007년 11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고, 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다.

기념관은 연중무휴다. 게다가 중국의 명승지인 시후(西湖) 바로 옆에 자리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자오 관장은 “많은 관광객들이 시후를 찾으면서 기념관을 방문하고 있다”며 “명절이 낀 연휴기간에는 하루 방문객이 1000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18만여명이 기념관을 찾았다. 이 중 3분의 2가 중국인이라고 한다. 자오 관장은 “‘항일’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한국 임정을 알리는 데 기념관이 한몫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오 관장은 매년 개최되는 시후 국제박람회 때 통역 자원봉사를 하면서 임정 기념관을 알린다. 올해엔 한·중 그림 전시와 공연을 할 계획이다. 그는 “양국 간 민간교류가 활발해져 함께 발전해 나아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아베 정권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일, 중·일 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동북아 긴장은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베는 진심으로 과거사를 반성해야 합니다.”

항저우에는 숙박시설로 사용되는 임시 청사와 임정 요인 거주지, 한국독립당 사무소 터가 있다. 원형은 훼손됐지만 임정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빠짐없이 붙어 있었다. 한국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하이 임정 청사에서 출발한 국민대 탐방단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현장인 훙커우(虹口)공원을 답사하고, 자싱(嘉興)에서 원형으로 복원된 김구 피난처와 임정 요인 거주지를 확인했다. 난징에서는 임정이 귀국한 후 한국인의 대변인 역할을 한 주화대표단 건물, 일본군이 아시아에 세운 위안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리지샹(利濟巷) 위안소 터 등을 둘러봤다.

중국은 지난해 하얼빈(哈爾濱)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우고, 시안(西安)에 광복군 제2지대 주둔지 표지석을 세우는 등 항일 역사를 매개로 한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탐방을 함께한 장석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국민대 국사학과 교수)은 “임정은 ‘여기서 주저앉으면 나라가 또다시 망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항저우에서 결의를 다졌다”며 “이 같은 항저우 임정의 존재 가치를 중국 정부가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국가급 유적 지정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쟁사적 관점에서만 독립운동을 바라보지 말고 인류평화 차원에서 임정 활동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202115215&code=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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