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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기업이 ‘신규 채용’ 두려워하는 이유 / 유지수 총장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경제가 불안하다. 유가 하락으로 석유화학산업, 조선산업, 에너지산업이 흔들거리고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기업을 보수적이고 방어적으로 만든다. 어떤 사람은 언제 경제가 좋은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도 한다. 사실이다. 경제 전망이 좋다고 한 뉴스를 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경제 위기를 언급할 때 적잖은 사람은 조소한다. 또 위기냐고? 아마도 이는 우리나라가 위기 때마다 슬기롭게 잘 극복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상황이 다르다. 문제는 경제 위기에 있지 않다. 기업이 문제다. 과거와 달리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많이 잠식됐기 때문이다. 생산성은 떨어지고 임금은 뛰어오르고 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할 별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유럽 선진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는 데 100년 이상이 걸렸다. 우리 기업 더러 창의적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라고 주문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고부가가치로 가고 싶지 않은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기술과 노하우가 오래 축적돼야 기업 변신이 가능하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의 기술 개발 역사는 짧다. 그렇다고 금융산업과 같은 고부가가치산업이 유럽처럼 수백 년 전부터 발달한 것도 아니다. 기업의 변신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런데 정책은 항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맞춰져 있다. OECD 회원국보다 더 나은 복지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도 단기간에. 기업 변신과 산업 구조 전환에는 시간이 걸리는데, 복지 정책은 쏜살같이 달려간다. 기업이 쫓아갈 수가 없다. 복지 시계와 기업 변신의 시계는 같아야 한다. 근로시간을 보자. 근로시간이 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근로시간은 빠르게 짧아지는데 생산성은 쫓아가지 못한다. 한국생산성본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시간당 생산성은 30.4달러로 OECD 평균 47달러에 훨씬 못 미친다. 34개국 중 28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생산성은 이렇게 낮은데 인건비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내년부터 300명 이상 기업에서는 정년 60세를 의무화하고 있다. 기업에 부담이 가중되는 법만 만들어지고 있다. 당연히 기업은 채용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걱정스럽다. 무엇보다도 아직 채용을 결정하지 못한 기업이 많아졌다. 조사한 기업의 41%가 아직도 채용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이는 2008년 이래 최고 수치다. 금융위기 때보다 불확실성이 더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신규 채용도 지난해보다 2.3% 줄었다. 특히, 매출 상위 30대 기업의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5.5%나 줄었다. 기업이 채용을 축소하는 것은 경기 불확실성과 인건비 상승 그리고 생산성 정체가 큰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법의 취지는 연령차별 금지와 고령자 고용 촉진이다. 법 덕분에 현재 직장인은 더 오래 일하게 됐다. 현재 직장인에게는 좋은 일이다. 반면,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는 정년연장법의 희생자가 됐다. 정년연장과 임금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젊은이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젊은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임금 개혁이 절실하다. 직장을 구하려고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젊은이들이 상실감에 빠지게 하는 정책을 만드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129010731110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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