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다른 관점에서 보고 새로운 경험 창조”/ 김성우(테크노디자인대학원) 교수


 

요즘 서비스 디자인이 유행이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이란 글자 앞에 놓인 명사는 디자인 작업의 산출 결과물이다. 제품 디자인은 제품 외관을 디자인하고, 패션 디자인은 의류를 디자인 한다. 이런 논리를 따라 간다면 서비스 디자인은 서비스를 만드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표현에 왠지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난 디자인과 전혀 상관없지만 지금 열심히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는데?”, “손에 안 잡히는 서비스를 어떻게 디자인 한다는 거지?” 신생 분야인 만큼 서비스 디자인의 실체가 무엇인지, 서비스 디자인은 기존의 서비스 기획이나 마케팅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서비스 디자이너는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나온다.

서비스 디자인은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에 기반해 기존 서비스의 경험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창조하는 분야다. 서비스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알려진 2010년부터 지금까지 약 5년간 서비스 디자인은 서비스 산업 속에서 사용자 경험(UX)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선진국과 유사하게 국내에서도 서비스 디자인은 의료와 공공분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강북삼성병원은 2012년부터 서비스 디자인 전문가 집단을 두고 지속적으로 의료 서비스 개선을 꾀해왔다. 여러 창구를 오가는 불편함을 줄여주는 통합창구는 이 병원의 대표적인 서비스 개선사례다.

의료·공공분야부터 서비스 디자인 적용
진료의 대기시간 단축, 병원 내 동선의 개선 (창구접수, 초음파 등 본진료를 위한 사전 검사, 본진료, 의료비 수납 등이 모두 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다보니 병원 내에서 종종 길을 잃는 이용자가 많다.), 병원 서비스 특성상 환자의 신체 노출이 많은 것을 고려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입원 및 진료실 공간 설계 등은 의료 서비스 디자인 영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적용사례들이다. 의료 이외의 민간부문에서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서비스 개선이나 곤지암리조트 서비스 디자인과 같이 전통적인 서비스 업종 뿐만 아니라 e편한세상의 오렌지 서비스, 금호 렌터카 드라이빙 솔루션 서비스 디자인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통한 품질 개선이나 혁신 서비스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벌이는 공공부문에서의 서비스 디자인 적용은 공공복지 향상 및 관할 거주민의 안전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염리동 소금길 프로젝트로 유명한 서울시 범죄예방 서비스 디자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사한 사례로 SBS 다큐멘터리로도 소개된 바 있는 회기동 골목길 개선과제도 있다. 2014년에는 다부처협력 공동사업으로 게임중독 및 성범죄 예방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 과제가 나온 바 있다. 왕따와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서비스 디자인 과제도 있다. 환경보호와 재난방지에도 서비스 디자인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데, 불산 누출사고를 방지하고자 공장에서의 유해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서비스 디자인 과제라든가 에너지 절감을 유도하는 아파트 관리 고지서 리디자인(re-design)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비스 디자인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긍정적 반응과 회의적 반응으로 갈린다.
 

 
긍정적 반응은 서비스 디자인이 적용되는 부문이 넓어지고 있으며, 관련 컨설팅 회사, 전공인력, 학교 교육 프로그램, 기업 내 전담조직 신설 등 전반적인 시장규모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회의적 반응은 이미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해오던 일을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해 실체가 없고 혁신보다는 자잘한 개선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또 민간부문에서 상업적 성공을 보여주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공공 디자인으로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확실한 사실은 서비스 디자인이 있기 전에 이미 서비스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100년 전에도 병원과 호텔은 있었다).

상품기획자든 최고경영자(CEO)든 이미 누군가 서비스는 만들고 있었다는 점에서 서비스 디자인이 ‘서비스 전체를 디자인하는 분야’라기보다는 다른 관점의 렌즈로 그간 보이지 않던 서비스의 문제점을 밝히고 한계점을 극복하게 도와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관점은 고객의 서비스
 경험이고 렌즈는 디자인 사고 방식으로 훈련된 안목이다. UX가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 갖는 가치가 여기에 있다.서비스 디자인은 유럽의 선진국에서 많이 발달됐는데, 특히 영국이 가장 앞서 있다. 여기에는 영국의 산업 구조의 현실이 어느정도 반영되어 있는데, 제조업이 한 물 가고 금융이나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 내수시장을 포함한 영국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이 디자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유럽에서 서비스 디자인이 발전한 것 역시 유럽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복지 제도와 삶의 질이 높다는 것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 서비스 디자인은 제조업이 저물어 가고 삶의 질과 만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비스 산업의 규모와 가치가 올라간 선진국형 디자인 영역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독일과 같은 예외도 있다. 제조산업에서 아직까지 강자의 위치에 있는 독일은 사실 서비스 디자인의 시초국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삶의 질과 서비스 가치는 유럽의 다른 선진국 못지않게 높다. 대한민국의 서비스 디자인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삶의 질 역시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대한민국처럼 경제규모 대비 지식비와 인건비가 낮은 나라도 드물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 상품인 서비스도 마찬가지 수준이다. 국내 서비스 디자인 시장의 확장과 안착 여부에 관한 회의적 시각의 기저에는 척박한 토양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있다. 따라서 국내 서비스 디자인은 당분간 공공 서비스 디자인 중심으로 벌어지고 민간부문은 추이를 지켜보며 대비하는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가 가까운 미래에 중국이 제조업에서 한국을 추월한 것으로 예견한다. 제조업이 저물고 대한민국의 미래의 경제를 이끌 신규 산업이 무엇이 되는가에 따라 국내의 서비스 디자인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한편 최근의 IT산업은 제조 중심에서 서비스로 흘러가고 있다. IBM은 아예 서비스를 주된 사업모델로 선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IT제조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는 매년 자사의 직원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시키고 있다.

애플 아이폰의 UX가 뛰어난 것에는 단말기 자체의 UI 조작감이 훌륭한 것도 있으나 앱스토어와 같이 누구보다 먼저 모바일 생태계 기반의 혁신적 서비스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간 서비스 디자인은 물리적 공간에서 주로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전통적 서비스 영역을 다뤄왔다. 병원이나 레스토랑과 같은 기존의 서비스에 IT를 하나의 서비스 기능(feature)으로 넣는 것과 앱스토어나 IPTV와 같이 물리적 공간과 사람인 서비스 스태프가 전혀 없는 순수하게 스크린 상에서 펼쳐지는 IT 서비스를 서비스 디자인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개선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도전이다. IT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IT 서비스를 중심으로 서비스 디자인이 활로를 개척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글 김성우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인터랙션디자인전공 교수

 

원문보기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12016074542663&outlink=1

이전글 ‘정치사 풍운아’ 성곡 선생, 타계 40년 만에 고향으로
다음글 [충무로에서]중요한 이메일만 보여드리지요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