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정치사 풍운아’ 성곡 선생, 타계 40년 만에 고향으로

-쌍용그룹 창업자 김성곤 40주기
달성 선영으로 이장 후 첫 추도식… 가족 뜻 따라 50여명 조촐한 의례
정·재계, 언론·교육 등에 발자취… 고려대 졸업식 축사 쓰다 별세

  
쌍용그룹의 창업자이자 정치인, 교육인, 체육인인 성곡(省谷) 김성곤(金成坤·1913~1975) 선생 40주기 추도식이 23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예현리 선영에서 거행됐다. 성곡 선생 묘소가 작년 10월 31일 이곳으로 이장된 뒤 첫 추도식이다. 그동안 성곡 선생 묘소는 서울 국민대 교정에 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으로 이장됐었다. 이후 선영으로 옮기자는 가족 바람에 따라 작년 고향으로 이장되면서 부인 김미희 여사와 합장됐다.

이날 추도식은 소박하게 치르자는 가족들 뜻에 따라 조용하게 거행됐다. 장녀 김인숙(76) 국민대 명예교수와 장남 김석원(70) 전 쌍용그룹 회장, 장손 김지용(42) 국민대 이사 등 13명의 가족이 참석했다. 해외 출장 중인 2남 김석준(62) 쌍용건설 회장과 해외 체류 중인 3남 김석동(54) 전 쌍용투자증권 회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현소환 전 연합통신 사장, 한종우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 김문오 달성군수, 김환열 대구MBC 사장, 박종석 현풍중·고교 교장 등 고인과 인연이 깊었던 인사 40여명도 참석했다.

 


가족들은 "묘소가 평창에 있을 때는 겨울이면 '춥지나 않으실까' 안타까웠는데 이제 40여년 만에 고향으로 모셔와 마음 편안하다"고 했다. 현소환 전 연합통신 사장은 "정계와 재계, 언론·교육·체육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라고 했다.

1913년 달성에서 중농 집안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성곡은 축구·유도를 잘해 '달성 장사'로 불렸다. 대구고보 시절 항일운동 주동자로 지목돼 퇴학당하고 서울 보성고보에 체육특기생으로 편입했다.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 상과 졸업 후 대구상공은행에 입사했으나 곧 그만두고 1938년 비누공장을 인수했다. 이를 발판으로 금성방직 설립, 태평방직과 아주방직 인수 등으로 자산을 불렸다. 이어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해 재벌 기업인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성곡은 언론에 관심이 컸다. 영남일보 창간에 관여했던 경험을 살려 1952년 대한통신을 인수해 동양통신(연합통신 전신)을 세웠다. 당시 외신 공급사와 체결한 계약서에 'S.K.KIM'이라 서명했고, 이후 'SK'가 평생 애칭이 됐다. 연합신문사(1954년)와 대구문화방송(1971년)도 인수했고, 1965년 성곡언론문화재단을 설립했다.

1967년엔 학계에도 지원이 필요하다며 성곡학술문화재단을 세웠다. 국민대를 인수하고 현풍중·고교를 설립해 교육에도 공헌했다. 경북체육회장, 대한유도회장을 역임하며 성곡기유도대회와 성곡컵국제유도대회를 열어 체육에도 기여했다.

정계에도 진출해 1958년 제4대 민의원(달성·자유당) 당선 후 4선을 기록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후엔 공화당 소속으로 6·7·8대 의원을 지낸 그는 1965~1971년 공화당 재정위원장을 지내며 '막후 실력자'로 불렸다.

성곡은 공화당 실세인 '4인 체제'의 주축이었다. 1971년 야당인 신민당이 JP(김종필)계 오치성 내무장관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하자 이를 부결시키라는 박 대통령 지시를 어기고 가결시켜(10·2 항명파동) 대통령을 격노케 했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성곡은 의원직 사퇴서와 탈당계를 제출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때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이 뽑히는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국 보스턴에서 지내다 1972년 귀국했고 이듬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8대)에 취임했다. 성곡은 1975년 2월 25일 서울 신문로 자택(현 성곡미술관)에서 고려대 졸업식 축사 원고를 준비하다가 뇌출혈로 숨졌다.

성곡은 "별일 없제?"란 말을 입버릇처럼 한 '소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1985년 발간된 '성곡 일화집'의 제목도 '별일 없제'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4/20150224000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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