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디자인으로 읽는 한국인의 삶](6) 욕망과 콤플렉스, 한국차를 디자인하다 / 구상(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

■포니, 1970년대 성장을 대변

오늘날 우리는 자동차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은 경제개발의 하나로 자동차 산업을 50년 가까이 발전시켜 왔고, 그동안 자동차는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왔다. 자동차 변화의 이면에는 자동차를 향한 우리들의 욕망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그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Pony)를 빼놓을 수 없다. 포니가 등장한 게 1976년이니 내년이면 40주년이다. 포니는 엔진과 변속기는 일본 미쓰비시의 1972년형 랜서(Lancer) 승용차의 것을 빌려 왔지만, 차체 디자인은 현대자동차 주도로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문업체 이탈디자인이 1974년 2월 완료했다. 

이후 차량 설계와 공장 건설 등을 거쳐 국내에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1976년 2월이다. 포니는 시판 첫 해에 1만726대가 팔려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1978년 12월에는 내수 7만8008대, 수출 2만4692대로 10만대를 돌파했다. 이후 1982년에 포니2가 나오기까지 내수 20만8000대, 수출 9만2000대로 최초의 단일 차종 30만대 돌파 기록을 세웠다. 포니는 1970년대 ‘잘살아 보자’는 목표를 향한 한국 사회 질주를 상징하는 셈이다.

포니의 차체 디자인은 전문적 용어로 이야기하면 패스트 백(fast back), 즉 트렁크 부분이 유리창과 동일한 경사면으로 만들어져 빠르게(fast) 흐르는 형태의 뒷부분(back)이다. 그러나 트렁크 뚜껑은 뒤 유리창과 분리된 구조이고, 4개의 문을 가졌으며, 승객실과 트렁크 공간이 분리된 3박스(box) 구조, 즉 세단(sedan)의 구조다. 사실 대부분의 패스트 백 형태의 차들은 객실과 트렁크가 연결된 2박스, 해치 백(hatch back) 구조인데, 포니는 특이한 구조와 형태를 지녔던 것이다.

1970년대 포니는 단순히 소형 승용차가 아니라 ‘자가용’이란 의미가 절대적이었다. 즉 부의 상징이었다. 운전기사를 둔 차도 적지 않았으며, 차체의 장식품도 보수적 이미지로 마무리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 사례가 차체의 지붕 부분을 검은색 인조가죽(일명 비닐레자)으로 씌우고, 휠 커버도 클래식한 이미지의 부채살 모양을 하는 등 부가적 치장이다. 이런 장식으로 마치 미국의 고급 승용차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모델이 시판되기도 했다. 차체 지붕에 인조가죽을 씌우는 것은 고급 승용차들이 개폐식 지붕을 가진 무개차였던 것에서 유래됐다. 

지붕이 열리지 않지만 마치 무개차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 승용차들은 인조가죽을 지붕에 씌워 장식을 하는 게 유행처럼 성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장식을 한다고 해서 차량의 본질적 특성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니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본래의 포니는 깔끔하고 모던한 조형요소로 마무리된 차량이지만, 지붕에 인조가죽을 덧대는 작업을 통해 품위(?)있는 고급 승용차와 같은 이미지를 풍기게 된 것이다. 

■1980년대 과시욕구의 그랜저

포니 이후 10년이 지나 1986년 등장한 국산 최고급 승용차 그랜저는 한국인들에게 성공한 기업가의 전형과도 같은 이미지를 제시했다. 현대자동차와 일본 미쓰비시가 공동 개발한 그랜저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차체의 승용차이기도 했다. 앞뒤로 쭉 뻗은 길이, 각진 차체, 굵직한 C필러에 달려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유리창은 전형적인 뒷좌석 중심의 ‘사장님 차’였다. 그랜저는 차체 길이가 5m에 육박했으나, 그 폭은 ‘꼼수’를 포함하더라도 1725㎜에 불과했다. 오늘날의 준중형 승용차 아반떼조차 차체 폭이 1800㎜인 것을 감안하면 좁다. 이는 차체 폭 1700㎜를 기준으로 자동차 세금이 달라지는 일본의 규제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1700㎜가 넘는 대형 승용차는 세금이 비싸다. 한국이 배기량 1600㏄를 기준으로 소형과 중형 승용차 세금이 달라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미쓰비시는 사실 1695㎜의 좁은 차체 양쪽에 각각 15㎜ 두께의 몰드를 붙여 1725㎜로 차체 폭을 늘린 효과를 내는 ‘꼼수’를 쓴 것이다. 일본에서는 준중형 승용차 차체 폭에 길이만 긴 대형 승용차였기 때문인지 그랜저가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긴 차체의 존재감으로 판매가 월등히 많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그랜저의 차체 폭이 준중형 승용차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사람은 사실 거의 없었다. 실질적인 실내 거주성과는 상관없이 긴 차체 이미지의 그랜저는 재벌 총수들이 타는 국산 최고급 승용차를 상징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부와 성공에 대한 갈망, 욕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자동차 메이커의 욕망, 제네시스

지금은 사실상 전 세계 모든 메이커의 자동차를 국내에서 살 수 있는 시대다. 수입차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성능 좋은 수입차, 특히 독일 차들은 대체로 비싸다. 독일 차들은 튼튼하고 고속주행 성능이 좋고, 프랑스 차들은 독특한 예술적 감성이 돋보인다. 

미국 차들은 크고 튼튼하며, 일본 차들은 정교하고 감각적인 데다 고장이 안 난다. 이탈리아의 차들은 무척 비싸지만 ‘명품’ 감각이 넘치며, 영국 차들은 귀족적이다. 각 국가의 차들은 이처럼 모두가 개성이 있고 저마다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 이같이 다양한 가치 중에서 한국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성능 좋은 독일 차와 감각적인 일본 차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차를 선택하기엔 주변의 눈총이 의식되고, 독일 차들은 값이 만만치 않다. 이제 국산 차들도 디자인의 세련도나 승차감에서는 일본 차와 겨룰 만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독일 차들의 성능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도 독일 차만큼 좋은 차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난 것 같다. 흥미롭게도 이런 욕구는 소비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자동차 메이커의 욕구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좋은 차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앞바퀴 굴림인지 뒷바퀴 굴림인지와 같이 어느 바퀴로 주행하느냐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탔을 때 편안해야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차이다.

그렇지만 자동차 메이커에는 뒷바퀴 굴림 방식의 고급 승용차가 마치 전 과목 만점의 우등생 성적표와도 같이 보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가 바로 후륜구동 방식의 고급 승용차 제네시스다. 2009년 1세대가 나온 뒤 이제 2세대로 발전한 제네시스는 국산 차도 독일 차만큼의 성능을 가질 수 있다는 자동차 메이커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의 욕망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 속에는 한국 사회 개개인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상승 지향, 성공에 대한 갈망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차체 디자인에서 보면 1세대 제네시스는 독일 차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2세대 모델에서는 자신만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 차 콤플렉스’는 느껴진다. 3세대 모델이 나오면 그런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워질까.

요즘 광고에서 들리는 말 중 ‘최선을 다해 보통이 된다’는 것이 있다. 최근 새로 시판되기 시작한 아반떼의 광고 문구이다. 최선을 다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보통의 수준이 된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보통의 수준에서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기술을 적용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대중 지향적 승용차조차도 최고의 기술을 담은 ‘명품’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를 또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면, 값비싼 명품에 집착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준중형 승용차는 한국에서 가장들의 첫 차 정도로 인식된다. 경승용차나 소형 승용차가 젊은이들의 첫 차라고 한다면, 준중형차는 가정을 꾸린 신참(?) 가장들을 위한 첫 차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바로 초보 중산층의 기준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차종이다. 그런 차종조차도 명품을 지향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대중들의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신형 아반떼는 1986년도의 국산 최고급 승용차였던 그랜저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편의장비로 중무장하고 있다. 30년의 시간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서구에서는 여전히 준중형급 승용차는 편의장비들보다 높은 연비 같은 실용성을 가장 큰 가치로 지향하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적 자동차 디자인

글로벌 산업으로 발전한 한국의 자동차가 지향해야 할 디자인, 이른바 한국적 디자인은 무엇일까. 

한국적 디자인은 사실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목표이자 이상이다. 한국적 디자인, 한국적 스타일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전통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단청이나 가지런한 기와, 원색의 색동저고리 같은 ‘전통적인 것’에서의 응용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라디에이터 그릴에 전통양식의 창살 모양을 붙이면 한국적 스타일일까. ‘전통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은 다르다고 본다. 전자는 시간이 흘러도 그다지 변화되지 않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19세기에 살았던 사람과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지금의 한국인이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가치가 오늘날의 가장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

자동차는 달릴 때 비로소 그 효용, 가치가 드러난다. 달린다는 것은 주행성능 외에도 도로의 조건, 사용자나 사용자 가족의 구성, 외출의 형태, 생활양식 등과 연관돼 있다. 

이런 것을 반영한 디자인이 ‘국적’을 가지게 한다. 독일 차는 아우토반의 영향으로 고속주행 성능이 뛰어나고, 미국 차는 넓은 국토와 직선도로 때문에 편안한 주행에 강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 자동차가 반영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한국 자동차는 가족을 편안하게 태우기 위한 공간이 중시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 차들의 넓은 실내 공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실내등에서도 한국과 외국은 차이가 있다. 가족 중심 문화의 한국은 큰 실내등이 있으나 서구에는 실내등 대신 개별 독서등이 있다. 

한국의 환경, 한국인의 성격이 반영된 차는 틀림없이 독일, 미국 차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보일 것이다. 결국 가족 모두가 차에 탈 때,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 자신의 차에서 느끼는 물리적, 심리적 만족감이 ‘한국적 디자인’의 자동차에서 느끼는 가치일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062011055&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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