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기고] 포용의 대상, 北 정권 아니라 주민이다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갑자기 더 위험해졌다. 미국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일본 국가민족주의의 공식화, 중국 패권주의의 부활, 북핵 개발 가속화 등은 한국인이 익숙했던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과 위협에 맞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인정하기 싫은 사실까지 솔직하게 인정해서 국익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택하는 것뿐이다.

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변수 중 대북 정책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러나 대북 정책에 대한 논쟁을 보면 전문가들조차 냉정한 분석보다는 감정이나 특정 이념에 지배당하고 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때, 대북 포용 정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고립과 제재에 희망을 건 강경책은 애초에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에 사뭇 달라진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성공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졌다. 둘째로, 장기적으로 볼 때, 포용 정책이 바람직한 성과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제재는 북핵과 미사일 개발을 늦추는 데 실패했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핵탄두 탑재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민생 경제에서 2~4%로 추정되는 성장을 이뤘고, 식량 상황을 개선하며 만성적 위기에서 탈출할 조짐이 보인다. 이처럼 제재는 북한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김정은 정권이 말로는 주체사회주의를 따르지만 실제론 1990년대 시작된 시장화를 촉진하고, 보이지 않는 개혁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중국의 태도다. 중국은 북한 붕괴와 남북 통일을 북핵보다 더 큰 위협으로 여긴다. 그래서 유엔 제재에 동참해도 북한 경제에 심한 타격을 줄 조치는 결코 취하지 않았다. 최근 미·중 관계 악화로 중국이 유엔 제재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까지 감안하면 대북 제재가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한국에는 북을 압박하자는 주장이 많지만 앞서 열거한 사실들을 고려할 때, 이런 압박에 집중하기보다는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1990년 11월 동서 국경개방조치가 발표된 후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있는 독일 국민들.
 

대북 강경책의 대안은 포용 정책, 즉 북한과 다양한 교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북 포용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것이 북한 정권의 행동을 바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포용 정책의 대상은 북한 정권보다 주민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북 교류·협력 확대는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류는 북한 내부에 필연적으로 바깥세상에 대한 지식의 확산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줄 동인이다.

옛 소련 출신인  필자가 잘 아는 사실이 있다. 소련과 공산권 붕괴를 야기한 것 중 선진국 생활에 대한 지식의 확산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외국인의 옷차림새, 외국 영화에 나오는 집 인테리어, 외국인들이 보여준 자연스러운 포즈의 사진 등은 소련인들에게 공산주의 체제의 낙후성과 비합리성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해야 할 대안까지 보여줬다. 북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2/20170112031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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