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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이원덕] 한·일 통화스와프, 관계복원 징표 / 이원덕(국제학부) 교수

지난주 한·일 재무장관회의에서 통화 스와프 논의 재개가 결정되었다. 한·일 간 통화 스와프는 양국 관계가 심각한 갈등과 마찰로 치닫던 작년 초 중단되었다. 통화 스와프는 통화 교환을 약속해 외화 유동성을 미리 확보함으로써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안전장치로서, 가계로 비유하자면 마이너스통장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현재 한국은 중국 호주 아랍에미리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5개국과 양자 간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통한 다자간 통화 교환 협정도 유지하고 있다. 전체 스와프 협정 체결액은 1200억 달러로 외환보유액 약 3700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이른다.

한·일 통화 스와프 협정은 2001년 100억 달러 규모로 출발해 14년간 유지되어 왔다. 2011년에 700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점차 줄다가 마침내 2015년 2월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100억 달러마저 중단되었다. 당시 일본은 팔짱을 낀 채 한국이 연장을 요청하면 고려해보겠다는 식의 자세로 나왔고 한국은 한국대로 외환보유액이나 국제금융 여건을 고려할 때 손을 내밀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 중단이 결정되었다. 과거사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일본에 칼자루를 주게 될지도 모를 선택을 꺼렸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경제적 합리성으로 보면 당시의 통화 스와프 중단이 이례적이고 특별한 결정이고 지금의 스와프 재개가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두 차례의 외환위기 때와 비교할 때 현재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나 외환 사정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고 여유 부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브렉시트로 인한 국제금융의 불안정성,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외화 유출 가능성, 장기적으로 볼 때 하락세로 돌아선 중국경제의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은 매우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조25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대외 순채권 2조8000억 달러를 보유한 세계 제1의 채권국이다. 더욱이 일본은 미국과는 무제한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한·중·일 관계에서 정경 분리의 원칙과 규범은 2010년 이래 사실상 와해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10년 중·일 간에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이 첨예화되자 중국은 희토류 금수 조치를 내린 바 있고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왕의 사죄 요구에 대해 일본은 통화 스와프 중단 카드를 내비친 바 있다. 한국의 경우도 작년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대일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압박 외교를 전개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의 끈을 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중·일 관계는 바야흐로 이슈와 영역에 따른 분리 외교가 종언을 고하고 정경 불가분의 시대로 진입한 형상이다.

한·일 관계도 지난 4년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감정적 대립을 벌이는 과정에서 경제, 통상, 문화 인적교류 모든 면에서 전반적으로 적지 않은 상처와 손실을 입었다.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거의 반 토막 났고 무역 규모도 상당히 축소되었으며 투자도 예전에 비해 많이 위축되었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300만명을 넘은 데 반해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170만명 정도로 줄었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통화 스와프 재개 결정이야말로 작년 말 위안부 합의 이전 일그러져 있던 한·일 관계의 복원과 정상화 과정을 보여주는 다행스러운 징표가 아닐 수 없다.

 

원문보기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14384&code=1117139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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