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대마불사` 관행 더이상 안된다 / 윤정선(파이낸스·회계학부) 교수

한진해운에 대한 금융지원을 거부한 정부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 대한 비난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상황에 처하면서 거래대금 납부의 지연되거나 미납될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한진해운 소속 선박에 대한 입항거부나 혹은 심한 경우 선박압류에 이르는 조치가 빈발하는 등 수출입 물류에 커다란 혼란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대금의 선결제 요구나 미지급금에 대한 독촉은 파산이나 법정관리가 임박한 기업에서 드물지 않은 일로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한 금리상승이나 기업가치 하락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한 가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한진해운의 경우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유는 한진해운의 물류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 기업들의 원활한 무역활동이 어려워지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에 대한 채권단의 추가적인 금융지원불가 천명은 발표 당시까지만 해도 재벌기업에 대한 대마불사의 관행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결정으로 여론 일각에서는 환영할만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파산위기에 처한 대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지원된 혈세는 늘 서민이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숫자였고 그럴 때마다 정부는 대기업이 파산할 경우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것이라는 이유로 대마불사의 관행을 합리화했다. 이와 같이 사회적 비용을 빙자한 대기업에 대한 대마불사의 관행은 덩치가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념을 낳아 주주와 경영진으로 하여금 일단 덩치를 키우고 보자는 식의 무분별한 성장전략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또한 국민의 혈세를 통해 회생된 기업은 주채권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돼 주채권은행의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도덕적 해이와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회생절차를 거친 기업의 매각이 지연됨에 따라 혈세를 통해 조달된 공적자금을 회수할 길이 막연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하는 와중에도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지원을 거부한 채권단의 결정을 여론이 반대하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당연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절차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물류대란에 채권단은 사면초가에 처해있다. 이는 해운산업의 특성상 물류대란이 발생하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될 것이라는 해운업계와 한진그룹 측의 경고를 간과한 대가이기도 하다. 목전에 진행되고 있는 물류대란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조치들을 강구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다만 이와 같은 혼란의 와중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애초에 대마불사의 관행을 거부한 초심이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거나 청산되는 것은 당연한 경제적 논리다. 이번 한진해운 발 물류사태의 수혜자 중 하나로 꼽히는 세계적인 물류회사 머스크만 하더라도 최근까지 교역량의 감소로 인한 수익성 저하에 대응하여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마다하지 않았던 기업이다. 그와 반대로 한진해운은 불과 수개월 전 전 회장 일가가 보유주식을 은밀히 매각함으로써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절차가 개시되는 시점까지도 한진해운의 대주주인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에 대한 자구노력을 거부하고 자회사의 회생을 위한 자금부담을 채권단과 정부에 떠넘기는 행태를 보여 왔다.

만약에 진정으로 한진해운이 구제의 가치가 있는 기업이라면 한진그룹이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먼저 나서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구조조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빙자하여 다수의 납세자들을 볼모로 한 대마불사의 관행을 이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원문보기: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60908021023516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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