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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이원덕] 국정마비가 초래한 외교참사 / 이원덕(국제학부) 교수

2012년 5월 개최 이후 3년여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국의 주도적 노력으로 작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서 3국 정상은 회의의 정례화를 약속했다. 올 12월 19일 또는 20일 도쿄에서 개최가 논의되고 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면서 회의 개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민심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속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공언했고 당국자들도 대통령이 참석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정치권이 내달 초를 목표로 삼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면 대통령 직무가 정지돼 정상회의 참석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 경우 직무대행을 맡게 되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할 수는 있으나 과연 황 총리가 참석하는 정상회의에 중국이 선뜻 응할지 의문이다. 설사 백번 양보해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하더라도 3국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자리에서 황 총리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리커창 총리 입장에서 보면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은 취임 후 첫 일본 방문이 된다. 역사문제 마찰과 영토 갈등으로 일본 방문이 조심스러운 데다 한국에 대해서도 사드배치 문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 리 총리로서는 도쿄행을 선뜻 결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내달 초순 박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면 중국은 회의 무산 책임을 한국에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중국이 최후까지 회의 참석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속내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관례에 비추어볼 때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되면 한·일, 한·중, 중·일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려 양국 관계의 중요 현안이 깊숙이 논의될 것은 자명하다.

한·중·일 3자회담의 플랫폼은 한국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외교공간이자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일, 대중 양자관계에서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 고충을 안을 수밖에 없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한·중·일 외교 프레임은 여러 면에서 큰 기회와 역할 공간을 제공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에 한·중·일 3국회의 사무국을 유치하고 3자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위해 누구보다도 한국이 공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3국 정상회담이 한국의 국정 컨트롤타워 마비로 말미암아 유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 안타깝고 원망스러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의 방일이 이뤄진다면 취임 후 최초의 일본 방문으로 기록될 것이다. 취임 후 3년간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극단적인 대립으로 정상 간 만남 자체가 회피되었고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냉각되었다.

그러다가 2015년 말 전격적인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대일 관계 개선의 물꼬는 텄지만 양국 관계를 복원하고 정상화하기 위해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대일 관계에서 정상외교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더라도 국정수행 능력이 완전히 고갈된 박 대통령이 3국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설사 일본 방문이 실현되어 아베 총리와 테이블에 마주앉더라도 의미 있는 정상외교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음은 분명해졌다. 미증유의 국정공백 사태와 극단적 정치혼란으로 비롯된 국난이 더 지속된다면 경제·민생은 물론 외교·안보 영역에까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와 손실이 초래될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다. 하루빨리 국정 정상화의 로드맵이 마련되길 손꼽아 기원한다.

이원덕(국민대 교수·국제학부)

 

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49306&code=1117139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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