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지시, 학문 생태계 어지럽혀" / 박종기(한국역사학과) 명예교수

"대통령이 가야사(史)를 연구·복원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소외 학문'으로 볼 수 있는 역사학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과연 가야사뿐일까요?"

고려 연구의 대표적 학자 중 한 사람인 박종기(66) 국민대 명예교수는 지난 6일 저녁 인터뷰에서 "가야사 연구 지시가 전임 정부의 국정교과서 파동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학문 개입이라는 하일식 한국고대사학회장의 우려〈본지 6일자 A17면〉에 공감한다"며 "정부가 역사학에 대해 지원할 방법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통령이 특정 분야 연구를 국정 과제로 지시하면 관료들은 동원 가능한 대부분의 자원(資源)을 이 분야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역사 연구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연구자들을 무시한 비(非)전문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5백년 고려사' '고려사의 재발견' 등 저서를 낸 박 교수는 비판적 한국사 연구 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장, 한국중세사학회장과 국민대 부총장을 지냈다.
 


박종기 교수는“정부가 특정 시대나 지역의 역사 진흥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역사학의 전반적인 인프라에
지원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대통령의 가야사 관련 지시에 어떤 문제가 있나.

"기초 학문인 역사학을 식물에 비유하자면,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연구 지시는 물 주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뿌리를 들어 올리거나 가지를 틀어버리는 격이다. 국가가 이렇게 개입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다. 역사학은 관광이나 토목공사 등 다른 사업과는 분리시켜야 한다. 신중하지 못한 복원은 오히려 파괴나 왜곡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자체에서 원하는 '역사 진흥'의 방향이 위험하다는 것인가.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복원 사업을 했는데 그건 전시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가야사 복원 사업에 1290억원을 투입했지만 과연 그만큼 연구가 진흥됐는가? 대통령은 이런 내 얘기를 충분히 알아들을 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한국사 중 가야사가 소외된 분야라는 건 사실 아닌가.

"한국사에서 소외되지 않은 분야가 어디 있나. 각 대학에서 교양 과정으로 축소되면서 전공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중 정말 시급하면서도 위험한 분야는 고려사다. 500년이나 지속된 고려는 우리 역사상 첫 실질적인 통일 왕조이고, 고대사와 근세사를 잇는 한국사의 '허리'에 해당한다. 내년이 고려 건국 1100주년인데 지역과 민족, 동서를 통합한 고려의 포용력과 개방성을 재조명해야 한다. 고구려와 백제 옛 땅 사람들의 유민(遺民) 의식이 고려에 와서 비로소 사라졌다. 그런데도 전공자가 고작 60~70명에 불과하고 유일한 고려사 연구 재단이었던 강화고려역사재단도 올 들어 문을 닫았다."

―고려사를 지원해도 '국가의 역사 연구 개입'은 마찬가지다.

"중요하지 않은 시대나 지역은 없다. 무조건 돈을 쓸 게 아니라 제대로 지원과 양성을 해야 하고, 금세 눈에 띄는 성과가 아니라 역사 연구의 인프라가 되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진 연구자를 육성하고 고전 번역을 활성화하는 일은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지만, 토목공사에 비해서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앞으로 주변국과 생길 수 있는 역사 문제에 대응하는 전문가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재임 중에 씨앗을 뿌렸다'는 데 무게를 두지 않고 5년 안에 뭔가 성과를 내려 집착한다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8/20170608000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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