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온의 소리] “영미! 영미!” 소통법 / 이의용(교양대학) 교수

우리 집 로봇청소기처럼 생긴 돌덩이를 밀어놓고는, 그 앞에 가서 길을 닦아주고 쓸어주는 참 우스꽝스런 경기, 컬링. 한번 시작하면 세 시간 가까이 관객을 꼼짝 못하게 잡아두는 바람에 심장 고혈압 안압 방광 디스크 심지어 청력에까지 이롭지 않을 것 같은 경기, 컬링.

서울도 아닌 무명의 지방 팀이면서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팀들을 모조리 한 판씩 이겨버리고 결승에 올라 은메달까지 따냈으니 이들의 활약은 누가 뭐래도 이번 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였다. 온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안겨준 여자 컬링팀과 모든 참가 선수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승훈과 정재원이 보여준 대로 팀 경기에서 팀워크는 생명이다. 그런데 팀워크는 소통이 만든다. 그래서 어느 종목이든 최고의 팀에는 독특한 소통 방법이 있다. 우리 컬링 팀에도 그런 게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용어 중에 ‘맥락(脈絡·Context)’이라는 게 있는데, 사물이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를 말한다.

쉽게 말해 대화 중에 “거시기…”라고 할 때 상대방이 그걸 쉽게 알아차리면 맥락이 깊은 거고, 그렇지 못하면 맥락이 얕은 거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사람들의 소통은 고(高)맥락에 가깝고 독일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북미 사람들의 소통은 저(低)맥락에 가까운 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문화적 요인이 있다. 전통적으로 동양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집단으로 살아왔지만, 서양 사람들은 이동하며 독립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동양 사람들은 서로 깊이 개입되어 살아간다. 이들은 생활 전반에 변화가 적고 반복적이고 안정적이어서 굳이 많은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눈치나 직감만으로도 어느 정도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전설의 고향 갑시다!” 해도 ‘예술의 전당’ 앞에 데려다 주는 일도 생긴다. 언어 자체보다 그 말을 하는 배경이나 맥락, 상대방의 속마음을 더 살피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양에 비해 말을 잘하는 정치인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만 번지르르하게…”. 이들은 집단 속에서 튀기보다는 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는 걸 중시한다. 인간관계도 수직적이다. 나이 계통 직위 권위 등으로 서열을 만들고 존댓말을 사용한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서로 개입하지 않는다. 이들은 ‘최적(the optimality)’보다는 ‘최선(the best)’에 무게를 둔다. 생활에 변화와 적응 요소가 많다 보니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정확한 표현을 좋아한다. 동양이 듣기를 중시하는 데 비해 서양은 말하기를 중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렇게 다르다 보니 고맥락 사람과 저맥락 사람이 만나면 웃지 못할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동양 사람이 같은 동양 사람에게 “언제 식사 한번 합시다!”라고 하면 그러자며 그냥 지나가지만, 서양 사람에게 그리 말하면 당장 수첩을 꺼내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적으려 한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 중 외쳐댄 “영미! 영미!” 소리는 전국적으로 모든 세대에 유행어가 되어버렸지만, 정작 단어 자체에는 뜻이 없다. “영미!”는 우리 선수들끼리만 쓰는 고맥락 소통 방법이다. 목소리의 높낮이 강약 장단 빠르기로 뜻을 표현하니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이가 아니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모두 김씨이고 세대도 고향도 출신학교도 같은 영미, 영미 동생,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친구들이다.

많은 소리를 내는 것도 독특하다. 경상도 사투리까지 겹쳐 그들의 대화는 알아듣기도 어렵고 시끄럽게도 느껴지지만, 매우 활발하게 소통하고 빠르게 합의를 하는 모습은 우리 팀만의 강점이었다. 최고의 팀에는 이런 독특한 소통법이 있었다.

이에 비해 경기장 바깥의 우리 사회는 너무도 답답하다. 교회도. 큰 목소리로 다투기만 하지 도무지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다.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너무도 다양한 주장을 내세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고맥락 아날로그 세대와, 일일이 말해줘야 알아듣는 저맥락 디지털 세대 간의 불통도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점점 높아만 가는 불통의 바벨탑을 무너뜨릴 열쇠는 가족 간의 소통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말에는 자녀들과 로봇청소기라도 틀어놓고 다같이 걸레 들고 “영미! 영미!” 외치며 집안 대청소라도 함께해 보면 어떨까.
 
이전글 [MWC2018] 미래 동영상콘텐츠를 위한 갤럭시S9의 진화 / 정구민(전자공학부) 교수
다음글 [ET단상]공공 SI사업 성공은 UI와 UX에 달렸다 / 안진호(대학원 경영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