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사풍향계-최성범] 네이버에 의존하는 세상 / 최성범(경영학부) 겸임교수

오래전 한 언론사 사주를 가리켜 ‘밤의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신문의 영향력과 가판이 있던 시절 가판 기사의 위력을 과시한 에피소드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네이버가 ‘밤의 대통령’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냥 농담만은 아니다. 그만큼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서 네이버가 갖게 된 권력이 막강하다는 방증이다. 과거에 신문사들이 갖고 있던 권력이 네이버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네이버는 언론사가 아니지만 뉴스 콘텐츠 시장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언론사들의 뉴스 콘텐츠를 헐값에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검색과 카페 등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어 오늘날의 위상을 확보했지만 여기엔 싸게 사들인 뉴스 콘텐츠가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점을 부인키 어렵다.

네이버는 언론사들의 서열도 매긴다. 네이버의 언론사 제휴 등급은 3단계. 최하등급은 검색 제휴사다. 아웃링크 방식이며 전재료는 없다. 현재 485개 영세 언론사들이 등록돼 있다. 그다음 단계가 이른바 뉴스스탠드 제휴사들. 장르별로 모두 203개의 언론사가 일종의 가판대인 뉴스스탠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중 124개 사가 최상위 등급인 이른바 콘텐츠 제휴사(CP)들이다. 인링크 방식이며, 네이버가 콘텐츠를 사서 화면에 노출시킨다. 네이버 화면에 기사가 올라가기 때문에 방문자수가 보장돼 광고 영업을 통한 최소한의 생존권 유지가 보장된다. 몇몇 언론사들은 해마다 네이버로부터 수백억원 대의 전재료를 받는다.

언젠가부터 네이버는 재벌을 닮아가고 있다. 하청기업 쥐어 짜내기, 문어발식 확장 등의 경영 행태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네이버의 위세가 너무 드세 콘텐츠 기업들이 크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지경이다.

‘드루킹’의 네이버 댓글 조작 사건을 계기로 네이버가 새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네이버 측은 댓글 횟수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시선은 곱지 않다. 이는 그만큼 네이버의 영향력이 크고, 불만이 많다는 방증이다. 몇몇 언론사들 이외엔 쥐꼬리만 한 전재료를 받고 어뷰징(abusing)이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네이버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언론계도 네이버에 의존하는 현행 구조를 자신들이 초래한 면도 있다는 걸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인터넷 포털 초창기에 언론사들은 뉴스 콘텐츠를 거의 공짜로 제공했다. 콘텐츠 전재료를 받지 않더라도 포털에 많이 나가면 광고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늘날 네이버를 키운 것은 광고에만 의존하는 언론사들의 수익구조였던 셈이다. 매출에서 광고 비중이 낮은 외국의 언론사들은 뉴스를 공짜로 제공하지 않는다. 구글이 포털이지만 뉴스 검색만 가능할 뿐이다.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사의 경우 유료 구독 수입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네이버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만큼 영향력이 큰 탓일 것이다. 네이버로선 자사 플랫폼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게 아니라 장기간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했고, 경쟁에서 이겼을 뿐인데 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이 있으면 책임도 커지는 게 상식이다.

어쨌거나 공은 언론계로 넘어왔다. 거액의 전재료를 포기하기 어려운 언론사도 있고, 영향력과 콘텐츠 유형에 따라 회사별 입장이 달라 의견 통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웃링크로 전환하면 전재료를 주지 않겠다고 시사한 네이버의 방침에는 약간의 여유 섞인 오만함이 엿보인다.

언론사들이 네이버만을 쳐다보는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야 할 방향이 아니라면 달콤한 전재료의 유혹을 끊고 아웃링크 방식을 통해 네이버 의존도를 낮춰야 언론으로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네이버는 재벌의 나쁜 모습을 닮아가지 말고 ICT산업 발전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최성범 국민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43355&code=11171333&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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