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옴부즈맨 칼럼]자기 목소리 없는 정치 쟁점_배규한 국민대 사회과학대 학장
2001. 8. 6. - 중앙일보 -


품격 있는 정론지(正論紙)는 고유한 향기와 색조를 지닌다. 시류(時流)에 흔들리지 않으며 당당한 논리와 주장으로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한다.

반면 `황색 신문` 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을 흥미 위주로 보도하며, 판매 부수를 늘리려는 상업주의에 골몰한다.

`사회적 공기(公器)` `제4부` 또는 `무관(無冠)의 제왕` 이란 별칭으로 불릴 때의 `언론` 이란 정론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정론지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특정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문은 `파당지(派黨紙)` 다.

이런 신문은 교묘한 논리와 편집으로 사실을 선택적으로, 또는 왜곡해 전달한다. 집권세력에 아첨하거나 정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 특별히 `어용(御用)신문` 이라 부른다. 언론개혁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신문의 성격은 과연 어떠한가.

중앙일보는 물론 황색신문이나 파당지 또는 어용신문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로 인해 `정론지` 라고 선뜻 말하기도 어렵다.

첫째, 사회적으로 쟁점이 될 만한 의제를 스스로 판단해 설정하지 못하고, 주로 정부나 기관의 발표, 심지어 다른 경쟁신문의 보도를 따라간다.

정론지는 누군가가 공급해주는 기사거리를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회현상을 스스로 찾아내 앞서 보도해야 한다. 이번 주 중앙일보가 기획취재한 자폐아 문제는 뒤안길에 숨어 있던 사회적 문제를 잘 끄집어내 보여줬다.

앞으로도 사회구조에 내재해 있어 위기의 근원이 되는 심각한 문제들을 시의적절하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할 것이다.

둘째,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부각됐을 때는 심층취재와 다각적 전망 등을 통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대응방향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경제위기 징후(2일 1면 머리기사 및 3면 "수출입 급감 내수마저 죽일까 걱정" )나 시중자금의 이동(4일 1면 머리기사 및 3면 "0.1%라도 더 주는 곳으로" )에 관한 보도는 좋은 기사였지만, 단순히 발표된 통계치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그 배경이 된 구조적인 문제나 앞으로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 정책적인 대응방향까지 분석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셋째, 시각에 따라 견해차가 큰 대립적인 쟁점의 경우 상반된 입장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정론지의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언론개혁에 대한 원로들의 성명서 보도(3일 1면 머리기사 및 3면 "언론자율개혁 원칙 강조" , 4일 4면 "원로성명 놓고 여야해석 제각각" )에서 보이듯 여야간 입장이 다른 정치쟁점의 경우 상반된 해석을 대비시켜 보도할 뿐 여론형성에 기여할 깊이 있는 해석이나 자기 목소리가 없다.

특히 대중의 인기를 노리는 정치인들의 신변잡기나 언론플레이용으로 흘리는 확인 안된 사실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넷째, 정론지는 지나친 상업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요즘 신문을 보면 광고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주의 경우 전면광고가 하루 평균 10여개 면이었고 2, 3개 면이 잇따라 실리기도 해 광고 속에 기사가 묻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광고량을 줄이고 질을 높이는 방법은 없는지 모르겠다.

정론지는 기자의 사명감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론에 대한 경영진의 깊은 철학과 투철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중앙일보가 고급 정론지로 자리매김하려면 시류나 외압에 따라 기사의 소재나 논조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신문사 자체의 문제의식과 판단에 따라 주도적으로 취재.보도하고, 분석과 해설기사를 통해 올바른 여론을 선도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과학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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