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검찰 위기, 사회 위기 <<裵圭漢( 국민대 사회대 학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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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9. 26 - 중앙일보 - ▶ 게 재 일 : 2001년 09월 25일 07面(10版) ▶ 글 쓴 이 : 배규한 이. 용. 호. 10여일째 국정감사장과 언론을 뒤덮으며 나라의 기틀을 흔들고 있는 이름이다. 43세. `1977년 K상고 졸업, 버스회사 경리로 취직, 80년 지입차량 운영,가스충전소 사업, 건설업을 거쳐 96년 부동산개발 사업, 97년 주식거래, 99년부터 기업사냥 등으로 1천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 이 정도의 약력과 축재과정만 보아도 누구나 그가 정상적인 사업가가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돈에 마비된 엘리트 집단 사업수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李씨의 능력이다. 29차례(또는 68차례)나 검찰에 입건되고도 단 한번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다. 검찰이 죄 없는 사업가를 증거도 없이 마구잡이로 입건했거나, 李씨가 검찰과 법원을 좌지우지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렇지 않고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5월, 李씨는 6백억원대의 횡령 및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하루 만에 석방됐다. 장기간 내사 끝에 긴급 체포한 피의자를 바로 다음날 풀어줘야 했다면, 이 사건을 담당한 `특수부` 는 이름과 달리 형편없는 무능집단이거나 부패집단, 둘 중의 하나다. 그렇지 않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李씨의 행적은 동창생, 향우회, 거액 로비 등 상식을 뛰어넘는 행태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고교 동창생인 전 폭력조직의 보스를 통해 수십억원의 로비자금을 정.관계 인사들에게 바치고, 국정원 및 금융감독원 간부들에게도 수천만원씩의 돈을 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유명 룸살롱 10여곳을 돌며 지속적으로 공무원.검찰간부.변호사 등을 접대해 왔다고 한다. 4년 전부터 검찰 및 정.관계 인사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 왔다는 李씨의 영향력은 한국의 공권력을 마비시켰다. 지난해 5월 구속 즉시 석방된 과정을 보면, 검찰총장과 법무장관까지 지낸 변호사가 담당 검사장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잘 검토해 달라" 는 전화를 했으며, 그 검사장은 담당 특수부장에게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니 알아서 하라" 는 지침을 주었다고 한다. 과연 검찰이 동향 선배의 전화 한통으로 구속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가? 검찰뿐 아니라 전 국세청장 및 현 장관, 국회의원, 검찰총장의 동생까지 로비의혹을 받고 있다. ` 이용호 스캔들` 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권력형 비리사건` 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李씨가 아니라 동창생.동향인이라는 비공식적 인간관계와 수천만원 또는 수억원씩의 돈에 마비돼 버린 우리들의 `엘리트` 집단이다. 엘리트에게는 권력과 명예와 부가 주어진다. 그것은 그들이 사회의 질서를 창출하고 유지하며 국가를 이끌어 나갈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이 폭력집단과 다른 것은 권력의 속성에 있다. 폭력집단에서는 보스가 자기 이익을 위해 부하들을 끌어모아 권력을 창출하지만, 국가 권력은 공익을 위해 국민들이 엘리트에게 일시적으로 위임한 것이다. 따라서 엘리트 집단은 사익보다 공익을, 개인보다 사회를 우선 걱정해야 한다. 李씨 스캔들을 두고 검찰 및 여권 일부에서 `검찰의 위기` `정권의 위기` 를 우려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나라` 를 걱정하고 있다. 일반 서민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데, 온갖 특혜를 누리는 엘리트들이 자기 집단의 위기만 걱정해서야 되겠는가? 특히 검찰은 사회정의와 질서를 위해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법을 집행하고 수호하는 기관이다. 검찰이 신뢰를 잃으면 무엇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겠는가? ***환부 도려내고 혁신해야 그동안 검찰은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정성` 을 의심받으며 `정치검찰` 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검찰이 연고와 로비에 흔들리는 `부패검찰` 이란 비판까지 받게 된다면, 그것이 어찌 검찰만의 위기이겠는가? 지금 검찰은 `검찰의 위상` 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자기 존립의 바탕인 `사회` 가 붕괴되고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한다. `정직` 이 최선의 방책이다. 검찰은 연일 대서특필하는 언론을 서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밝히고 환부를 도려내는 자기 혁신의 길을 가야 한다. 엘리트는 개인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사회를 위해 자기 몸을 던져야 한다. 裵圭漢( 국민대 사회대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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