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글로벌포커스] 사자(死者)에겐 아무리 큰 돈도 의미가 없다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기대가 많았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었다. 북한 측은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제재가 해제될 경우에도 영변이 아닌 핵시설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표시하였다. 북한의 `어마어마하고 믿을 수 없는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을 강조해 왔던 미국 대통령은 북한 엘리트의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경제를 무시하지 않지만, 다른 나라의 엘리트만큼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북한과의 외교에서 경제 수단은 가치가 있지만 그 힘은 생각보다 약하다. 우리는 경제가 지배한 세계에 매우 익숙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현 정권의 인기와 지지율은 경제 성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민주국가에서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정권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온건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오늘날 베네수엘라처럼 혼란과 정치 위기가 생긴다. 그 때문에 세계 어디에나 권력자들은 경제 발전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은 매우 특수적인 나라이다. 북한 엘리트가 경제를 어느 정도 경시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있다.

북한 권력자들은 서민들이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을 마음속에서 느껴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도 여전히 정치 노선이나 정권에 대한 불만의 공개적인 표시는 자살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엘리트 계층 전부가 `체제 붕괴의 악몽` 시나리오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정권이 교체되어도 공무원 절대다수는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며, 구여권의 정치인들은 야당 활동을 시작하거나 기업이나 대학교 등에 취직한다. 권위주의 국가라 해도, 중급·하급 엘리트뿐만 아니라 고급 엘리트 대부분도 체제 붕괴 이후를 걱정할 이유가 별로 없다. 예를 들면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정권이 무너져도 대령은 여전히 대령으로 남아 있으며, 학교 교장은 여전히 교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그렇지 않다. 북한 체제가 무너진다면 동독처럼 흡수 통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 간부들은 이렇게 될 경우, 통일한국의 거의 모든 중요한 자리는 남한 출신들이 차지하고, 자신들은 옛날 인권 침해 등으로 처벌받을 줄 알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공포는 과장이 매우 심하지만, 근거가 있는 것이다.

북한 엘리트계층은 나라의 발전을 원하지만, 자신들의 생존 조건으로 여기는 체제 유지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핵 보유는 체제 유지의 유일한 보증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해외에서 투자와 지원을 많이 받고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해서 민심을 잡고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은 1960~1970년대 남한처럼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을 향후 30년간 이룬다 해도, 남한을 따라 잡기 어렵다. 잘사는 남한의 매력, 남한 생활에 대한 소문의 확산 등은 여전히 북한 권력의 기반에 중대한 위협을 가할 것이다. 그런데 리비아 카다피 대령의 경험이 잘 보여 주듯이, 핵을 포기한 북한 권력자들이 인민봉기나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한다면, 국제사회는 `민중학살` 등의 이유로 개입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때문에 핵을 포기한 북한의 경제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주장은 맞을 수도 있지만, 북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권력뿐만 아니라 자유와 생명까지 심하게 위협할 수 있는 비핵화 정책을 할 생각조차 없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것은 냉정하며 합리주의적인 태도이다. 생존은 성공보다 중요하다. 사자(死者)에게 아무리 큰 돈도 의미가 없다. 북한 엘리트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감안해야 타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9&no=13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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