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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칼럼] 국민 무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장 큰 장점은 유권자 의사와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수와 비례성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아직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결사반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아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대체로 전체 의원 수는 그대로 두고,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정당투표와의 연동비율을 50%로 하고 석패율 제도까지 도입하는, 상당히 복잡한 형태의 제도 도입에 합의를 이뤄가고 있는 것 같다.
 
중앙선관위도 2015년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권역별이라는 제한을 둔 것은 고질적인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보완책이며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적게 잡아도 50명 정도의 의원 수가 늘어난다는 것도 밝혔다. 전문가들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찬성하는 쪽이 많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사회적 균열과 갈등을 완화하고, 다원화된 이익을 대표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점과 이 제도를 도입해야만 승자독식 구조를 없애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진정한 정치개혁일까? 적어도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연말 손학규 대표는 예산법안을 볼모로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검토 약속을 받아냈을 정도로 이 제도 도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를 비롯한 11개 법안을 끼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이른바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

어떤 선거제도가 가장 좋은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선거제도는 역사적 경험과 정치문화, 공동체의 의식수준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할 때, 필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기대효과는 과장되어 있는데 반해 부정적 효과는 축소돼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정치에 대한 신뢰가 높아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우리 국민은 정당과 국회를 신뢰하지 못한다. 비례대표가 아니라 비리대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지금도 각 정당이 선정한 비례대표 의원들이 공정하고 합리적 과정을 거쳐 선발된 것인지, 의원으로서의 품위와 자격이 있는지에 많은 의구심이 있다.

비례대표가 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반영하고 갈등구조를 완화시킨다는 것은 교과서적 얘기일뿐 실제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다당제여야만 다양한 이익이 반영된다면, 민주주의의 본산인 미국이나 영국은 왜 양당제인가? 다당제는 작은 정당들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가능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다수 이익보다 편향된 소수이익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정 이익집단이나 직군을 대표해 선택된 비례대표 의원들도 궁극적으로 재선이 목적이어서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를 배정받기 위해 정당 지도부나 유력 정치인에 충성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또 그들이 대표할 이익은 정당의 정책으로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으며, 이미 다원화된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활발히 정치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 제고 및 지역주의 완화 가능성에 있다. 과연 그럴까? 수도권에 막대한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된 현실을 고려할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의원이 수도권에 배분될 가능성이 높다. 또 선거제도를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지역주의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문화적 현상이며 좋게 보면 지역 간 경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과도한 지역주의는 지역주민들 스스로 이익 극대화를 위한 선택으로 해결해야지 선거제도를 인위적으로 바꿔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선거제도 개편논의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국민이 논의과정에서 배제돼 있다. 비례대표제 자체의 존립을 포함해 3권분립을 위협하는 의원의 국무위원 겸임 등 다양한 문제를 대상으로 한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다음 개헌에 반영한 후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출처: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9040502102269660002

※ 이 기사는 별도의 저작권 요청을 통해 게재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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