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텔스타와 테이프 축구공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텔스타와 테이프 축구공

디자인 결과물만큼 아름다운 디자인 여정을 위해

스포츠 경기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히 살아 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맹렬히 달려가 아파트 2층 높이의 허들을 뛰어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인간 육체가 지닌 한계의 해방과 함께 모든 인고의 시간을 보상받는 감격을 동시에 맛본다.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이런 숨 막히는 열정과 매혹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를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내고, 견고한 토대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힘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조현신 

 

거의 완벽하게 디자인된 축구공의 얼굴 뒤에는 험악하고 마주하기 힘든 탄생의 비밀이 있었다.


축구 경기를 보자. 축구장은 푸른 잔디에 흰 라인과 매트로 단순하게 디자인돼 있으나 복잡한 게임의 룰을 품고 있는 암묵적 기호이다. 각 축구단의 엠블럼은 자랑스러운 역사와 정체성을 나타낸다. 유니폼은 경기장에서는 숨 가쁜 기호이며, 경기장 밖에서는 거대한 팬덤의 핵심 컬렉션 대상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정교하게 디자인된다. 그리고 휘슬이 울리면 연간 누적 40억 명의 축구 관중은 하나의 점, 축구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함성을 지르고 탄식을 자아내며 한쪽에서는 칭찬을, 다른 쪽에서는 지탄을 한다.

 

과학적 디자인의 정수, 텔스타 축구공
인류가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짚이나 돼지 오줌보로 공을 만들어 썼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1872년 가죽 공을 쓰기 시작한 후 긴 역사를 거쳐 최초의 월드컵인 1930년 우루과이 대회에서는 현재의 배구공과 비슷하게 생긴 축구공을 사용했다. 또한 국가마다 사용하던 공이 달라 결승전에 진출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서로 자기네 공을 쓰겠다고 해서 전반에는 아르헨티나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의 공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월드컵에서는 1970년부터 아예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주관하는 공인구 제도를 도입했으며, 아디다스가 제작을 전담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된 1970년의 멕시코 월드컵 공인 축구공인 ‘텔스타(Telstar)’는 축구공의 원형처럼 여겨진다. 서울의 상암 월드컵경기장 앞에 세워진 거대한 축구공 조형물 역시 이 텔스타 모양을 띠고 있다. 사람들에게 축구공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이 형태로 그릴 정도다. 이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미국 디자이너 벅민스터 풀러가 디자인했다. 그는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의 미국관을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으로 선보였는데 이는 삼각형 면들을 연결해 둥글게 만든 것으로 적은 재료로 가장 크고 가벼운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축구공 텔스타는 이러한 원리로 삼각형 20개를 연결한 구조의 꼭짓점을 깎아서 최대한 둥글게 만든 것으로 오각형 12개와 육각형 20개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초의 텔레비전 위성중계를 시도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공인구는 ‘텔레비전 스타(Television Star)’ 즉 ‘텔스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공이 흑백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유는 흑백 TV에서 공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후 더 과학적이며 효율적으로 축구공을 만들려는 노력은 끊임없었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의 ‘자블라니’는 8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브라주카’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텔스타 18’은 6개의 패널을 사용한 혁신적인 축구공으로 인정받는다. 월드컵 공인구의 평균 가격은 현재 16만 원 선이라고 한다. 

 


휴머니즘 디자인의 얼굴, 테이프 축구공
이렇게 기능의 최적화, 형태의 완벽함, 색채와 이름까지 디자인의 미덕을 다 갖추고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등장하던 축구공이 윤리적으로 비난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공인구 트리콜로르(Tricolore)가 아디다스사의 파키스탄 공장에서 어린 아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글로벌 마치를 통해 알려졌고, 평균적으로 16만 원에 팔리는 축구공 한 개에 약 150원의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또한 5세부터 일한 한 인도 소녀가 하루 종일 아디다스 축구공 2개를 만들었는데, 이 소녀는 7세 때 눈이 멀었고, 인조가죽의 화학 성분이 연약한 소녀의 육체에 끼친 결과라고 했다. 유니세프와 국제노동기구의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고 아디다스사는 거액의 아동보호기금을 기부하고 공개 해명을 하여야 했다. 이렇게 거의 완벽하게 디자인된 축구공의 얼굴 뒤에는 험악하고 마주하기 힘든 탄생의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디자인은 이러한 이중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축구는 가장 원초적인 기쁨을 주는 놀이이며 어떤 값비싼 장비도 없이 공만 가지고 승패를 겨루기에, 가난한 아이들도 대성의 꿈을 꿀 수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미국 파슨스디자인학교의 학생인 리자 포리스터와 마르티 귀세는 이런 축구의 본질에 착안하여 ‘DIY 축구공 테이프’를 만들었다.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에게 이 테이프 하나는 축구공 몇 개를 만들 수도 있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사용설명서에는 비닐봉지에 잡지나 신문지, 헌 옷가지를 넣고 노끈으로 감아 둥글게 만든 다음 테이프를 감으면 축구공이 완성된다고 적혀 있다. 텔스타가 ‘축구를 위한 최고의 기능적 디자인’을 선사했다면 축구공 테이프는 ‘축구를 통한 꿈과 희망의 디자인’을 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텔스타가 ‘축구를 위한 최고의 기능적 디자인’을 선사했다면 축구공 테이프는 ‘축구를 통한 꿈과 희망의 디자인’을 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현재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의 이름으로 전개되는데, 디자인 업체 아르테니카는 “우리의 디자인 여정은 그 결과만큼이나 아름답다”라고 공언하면서 후진국의 장인들과 협동하여 그곳의 소재와 디자인을 이용한 결과물을 생산하여 전 세계 유명 아트숍에서 판매하고 있다. 디자인은 이제 형태나 색채, 기능의 빼어남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전쟁과 테러, 에너지 위기와 지구 생태계 존속의 문제와 더불어 빈부 갈등, 남녀 문제, 세대 간 갈등의 봉합을 위해 디자인은 디자인 결과물 뒤의 그 탄생 과정의 아름다움까지 점검하는 사회 혁신적 의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 작년에 <감각과 일상의 한국 디자인문화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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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별도의 저작권 요청을 통해 게재 허락을 받았습니다.

 

원문보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0758670&memberNo=628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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