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국민논단―김동훈(국민대 교수·법학)] 명문 선호와 졸부의식


2002. 5. 20. - 국민일보 -



최근 명품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과거에 유한 마담들이 신분 과시를 위해 몇 백만원짜리 코트나 브랜드 있는 가방 등을 들고다닌다는 이야기는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20대 아니 10대까지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가방이나 옷,액세서리 등을 구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를 구입하기 위해 명품계까지 들고 카드 빚에 허덕이는 등 부작용도 많다고 한다.

경제학자 정갑영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두 가지 경제용어로 설명했다. 하나는 ‘속물 효과’라 하는데 명품을 갖게 되면 자신도 명품이 되어 상류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편승 효과’로서 이른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현상이다. 이러한 속물 효과와 편승 효과가 결합해 명품에 대한 수요가 가격과 관계 없이 하늘을 찌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속물들은 계속해서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 더 높은 가격대의 명품을 구입하고 뱁새들은 이들과 같아 보이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같은 수준의 물품을 구입하려 발버둥치는 상승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설명이다.

본래 명품이라는 것은 장인 정신이 녹아 있어 그 심미적 가치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 소장하는 진귀한 물건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다만 비싼 가격에 널리 알려져 있는 상표라는,그래서 착용하는 사람이 돈 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의 비뚤어진 명품 열기는 우리 사회의 명문대 열기와 그 심리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명문 대학이란 곧 ‘브랜드 대학’이다. 즉 철저한 상품성에 의해 판가름된다. 명문대라는 브랜드를 덧입는 것은 마치 루이 뷔통 가방이나 페라가모 원피스를 걸친 여인처럼 그것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특별한 매력과 능력을 갖춤으로써 사회 상류계급의 구성원이 되도록 준비된 사람들이라는 사회문화적인 착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스스로 그런 착각에 빠진다. 명문이라는 말 속에 담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간 데 없고 수능 점수로 얻은 전리품으로서의 브랜드만 남는다.

아직도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는 여성 상대 결혼 사기 행각에는 이러한 명문대 사칭의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명문대 출신이라고 속여 결혼까지 한 뒤 결국 탄로나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명문이라는 브랜드 앞에서 이성을 잃고마는 것은 결국 명품을 추구하는 동기인 속물 효과 때문이다. 명문이 되기 위한 어떤 고귀한 노력도 없이 사회적 상류계급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속물적 자세가 이러한 명문 선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남들보다 더 가진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투자해 재생산해낼 수 있는 명문이라는 가치는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물론 이 명문 브랜드는 효용 가치도 높다. 명품을 걸치고 다니면 역시 물건을 보는 눈이 있는 속물들이 그것을 알아주는 것처럼 명문대 브랜드만 덧입고 다니면 역시 같은 속물들이 그 앞에서 껌뻑 죽기 때문이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브랜드 학벌을 기초로 한 ‘지위집단’이 형성되고 이 속물들은 끼리끼리 뭉쳐 명문 이데올로기와 ‘아비투스(habitus·습속)’를 사회적으로 유포시킨다.

이에 대해 역시 편승 효과가 생겨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나도 수능시험만 잘 치르면 명문에 낀다’는 환상 속에 온 가족이 바늘구멍 같은 한정된 명문 브랜드 상품을 놓고 사생결단의 경쟁을 벌이고 그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품질과 상관 없이 명문의 브랜드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된다. 우리 사회를 휩쓰는 명품 열기 속에 오늘도 유명 백화점은 발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리고 물건 값으로 몇 백만원이 가볍게 호가된다. 이에 못지않은 명문 열기 속에 강남의 대치동은 입시명문을 내세우는 학원들로 가득 차고 몇 십,몇 백만원의 수강료를 가볍게 부르는 학원들에 학생들은 넘쳐난다.

우리 사회의 명문대 열기는 그 자체로 속물적이다. 이는 과거에 개발 붐을 타고 부동산 투기로 졸부가 된 사람들의 천민의식이 정신적 문화적 측면에서 변용된 것이라고 본다. 이들에게는 부자가 되는 것이 투기놀음이었던 것처럼 명문이라는 호사스런 이름을 얻는 것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사업일 뿐이다. 또 이들은 부자가 된다는 것을 목에 힘주고 위세부리며 살아보는 것으로만 아는 것처럼 명문의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어깨 펴고 대접받고 사는 지름길이라는 것외에는 알지 못한다. 아! 허망한 이름,명문이여.

김동훈(국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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