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국민논단―김동훈] 월드컵을 지역분권의 시발로


2002. 6. 25. - 국민일보 -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 축구대회가 정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더구나 우리 대표팀이 4강 진출이라는 누구도 예상못한 기적적인 전과를 이룩하면서 한반도는 붉은 색의 물결이 뿜어내는 열기로 거대한 용광로가 되었다.월드컵 대회에서의 성취는 무엇보다 우리 민족에게 한없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주었다.이제 대회는 곧 끝나겠지만 월드컵 대회가 또 한번 국운 융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월드컵 대회를 보면서 나는 14년전의 서울 올림픽을 떠올린다.당시 우리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몇십년만에 이루어 낸 근대화의 자랑스러운 성과를 세계에 보인다는 점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대회를 잘 치러냈다.이를 위해 서울특별시에는 엄청난 국가예산이 퍼부어져서 세계의 유수한 도시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단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은 말 그대로 주최가 서울이라는 하나의 도시였다.‘세계는 서울로,서울은 세계로’라는 표어에서,또 서울이라는 ‘특별시’의 육중한 고층건물과 고가도로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민족의 근대화의 결정(結晶)을 찾았고 모든 지역의 국민이 이를 민족적 자부심과 동일시하여 한마음으로 참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일 공동월드컵은 그 절반의 지분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그 개최지다. 우리에게 배정된 월드컵 32게임은 서귀포에서 서울의 상암경기장까지 우리나라 10개 지역의 구장에 고르게 분배되었다.가장 인상적인 것은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지켜보고 500만이 거리응원에 나선 한국의 경기가 열리는 장소가 이른바 지방이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온 국민의 관심이 열리는 행사는 당연히 서울에서 열려야 했다.프로야구의 하일라이트인 결승전 역시 소속구단이 지방이라도 서울에서 열려야 했다.유명한 국가적 문화행사나 외국 저명 악단의 방한 연주나 모든 볼만한 행사는 서울에서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다.지방에서 열리는 행사는 그저 지방단위에서 그쳐야 했고 행여 중앙언론에 한 번 비쳐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월드컵 대회는 이러한 우리의 서울 중심주의에 도전을 주기에 충분한 기회가 되었다.대한민국이 대회의 개최지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어디에 거주하든 공평한 지분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리를 새삼 접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서울 중심주의는 비효율이나 권력과 물자의 집중 등 가시적 폐해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비교하자면 서울과 지방의 관계는 홍콩과 광둥성, 또는 싱가포르와 말레이반도 등과 같이 서울이라는 도시국가에 대해 지방이 그 배후지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서울 및 그 위성도시의 거주자와 지방 거주자 사이에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로서의 일체감마저 훼손하는 깊은 단절과 소외의 감정이 깔려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악습인 지역주의도 그 실질은 지방과는 별로 관계도 없는 서울 거주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출신지역을 팔아먹는 행태에 다름아니다.학벌주의라는 망국병도 서울 중심주의로 인해 지역 거점의 명문대학들이 존재할 기반이 무너지면서 서울 소재의 몇몇 힘쓰는 대학들로 문화권력이 집중되고 그로 인해 파벌이 형성됨으로써 만들어진 악성의 문화현상이다.

이러하기에 이제 지역(지방이 아님)거주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반란(?)의 기운이 솟아오름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각 지역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분권 선언이 나오는가 하면 연방주의적인 국가 구성을 제안하는 안들도 나오고 있다.이러한 기운이 더욱 뻗어나가 국가의 분열을 막기위해서라도 지역분권을 실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로 몰고가야 한다.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온 나라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기를 치르는 지역들의 자긍심과 신바람에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월드컵 대회가 서귀포에서 서울까지,또 울산에서 광주까지 모든 지역이 자긍심을 회복하고 정치와 삶의 주체로서 거듭 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이미 서울 올림픽을 끝으로 ‘서울 일극주의’를 청산하고 과감한 지역분권의 길을 걸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우리 삶의 질은 여전히 척박하기만 하다.

월드컵 대회 내내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와 박수가 전국의 산천을 흔들고 있지만 지금과 같이 다수의 지역 거주자를 ‘지방민’이라는 이름으로 소외시키는 구조를 혁파하지 않는 한 그것은 일시적이고 내용없는 공허한 함성으로 끝날 것이다.

김동훈(국민대교수·법학)

이전글 한국미술작가상에 임립, 박경순(국민대 교수)
다음글 [동정] 김현수 한국SI학회장(국민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