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1873년 디오픈 ‘클라레 저그’가 처음… 우승자에겐 ‘복제품’/ 최우열(체육대학) 겸임교수

골프대회 ‘우승 트로피의 역사’

1860년 첫 개최된 디오픈 염소가죽·은제벨트로 시상 1895년에 창설된 US오픈 우승자가 트로피 ‘1년’보관 높이 71㎝ - 무게 12.25㎏ PGA챔피언십 최대 사이즈 마스터스, 클럽하우스 본떠 스위스챌린지, 소방울 모양

프로 투어에서 대회가 끝나면 대개 일등을 차지한 선수는 상금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받는다. 또 대회에 따라서는 재킷이나 메달도 함께 시상된다. 이런 트로피는 왜, 언제부터 우승자에게 주어지게 된 것일까.

트로피는 원래 전쟁에서 노획한 적의 무기나 깃발 혹은 포로나 적의 신체 일부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트로파이온’에서 유래한 말로,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리품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는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줬고 별도의 트로피는 없었다. 이후 올리브유가 가득 담긴 토기를 함께 상으로 주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우승자에게 화병이나 은으로 만든 컵 등을 수여했다. 

스포츠에서 지금처럼 잔 모양의 트로피를 상으로 본격적으로 주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부터다. 신대륙에서 경마 경기 우승자에게 종교 행사에 주로 쓰이던 은으로 만든 넓적한 모양의 성배를 준 것이 그 시작이었으며, 이후 보트 경기나 자동차 경주 등 타 스포츠 분야로 퍼졌다.

골프에서 우승 트로피가 사용된 것은 최초의 골프대회인 브리티시오픈(디 오픈)이 효시다. 1860년 대회가 처음 창설됐을 때만 해도 우승 트로피 대신 모로코산 붉은 최고급 염소 가죽과 은제 버클로 제작된 벨트가 상으로 수여됐다. 프로권투의 챔피언 벨트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1870년까지 모두 11차례나 우승자에게 수여됐던 이 ‘챌린지 벨트’는 3년 연속 우승자에게 영구 지급된다는 규정에 따라 1870년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스코틀랜드의 영 톰 모리스가 가져갔다. 예상치 못한 모리스의 3연속 우승으로 갑자기 우승자에게 수여되던 벨트가 없어진 주최 측은 당황했고, 새로운 상을 준비하는 문제로 우왕좌왕하다 그만 다음 해인 1871년에는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1873년부터 디 오픈 우승자에게 처음 수여된 우승 트로피가 바로 ‘클라레 저그’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보르도산 적포도주를 담아서 먹던 은으로 만든 작은 술주전자의 일종이다. 우승자에게 직접 지급됐던 클라레 저그 진품은 1927년부터는 영국 R&A가 영구보관하고 우승자에게는 매년 복제품이 지급된다. 

1895년 창설된 US오픈은 처음부터 우승자에게 은제 트로피를 수여했다. 우승자는 일 년간 트로피를 집으로 가져갔다가 다음 대회 때 미국골프협회에 트로피를 반납한다. 1946년 우승자인 로이드 맹그럼도 트로피를 가져가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클럽하우스에 전시했는데, 하필이면 큰불이 나는 바람에 트로피가 클럽하우스와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의 트로피는 1947년 원래 트로피를 그대로 복제해 다시 만든 트로피다. 트로피를 영구 소장하고 싶은 경우, 우승자는 실물 크기의 90%인 복제품을 직접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

1916년 시작된 PGA챔피언십의 우승 트로피는 ‘워너메이커 트로피’라고 부르는데, 트로피를 기증한 미국의 백화점 재벌 로드먼 워너메이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순은으로 제작된 이 트로피는 높이 28인치(약 71㎝)에 지름 10.5인치(27㎝), 그리고 무게가 무려 27파운드(12.25㎏)에 달하는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큰 우승 트로피 중 하나다. 

워너메이커 트로피는 중간에 한 차례 분실됐다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승자가 일 년간 트로피를 보관했다가 이듬해 대회 때 반납해야 했는데, 1924년부터 27년까지 4년 연속 우승한 월터 헤이건이 1926년 대회 때 트로피를 가져오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계속 우승할 거라서 그랬다고 했으나, 1928년 다른 사람이 우승하자 헤이건은 1927년 우승 직후 트로피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자취를 감췄던 워너메이커 트로피는 1930년 우연히 한 청소부에 의해 다시 발견되는데, 다름 아닌 헤이건이 설립한 골프용품 회사의 창고에서였다.

현대의 골프 우승 트로피들은 전통적인 주전자나 잔 모양을 벗어나 더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그린재킷으로 유명한 마스터스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트로피는 대회장인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를 축소해 놓은 모형이다.

모로코의 전 국왕 하산 2세를 기리기 위해 개최되는 유러피언투어 ‘트로피 하산2세 대회’의 우승 트로피는 다이아몬드 등 각종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모로코 전통 단검이다. 이 트로피는 모로코 아가디르의 왕궁 근처의 대회 코스에서 왕세자가 직접 하사한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유러피언투어 스위스 챌린지의 우승 트로피는 목축업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전통 워낭(소방울)이다. 시상식 장면만 보면 골프대회인지 축산대회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60301032839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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