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소나무를 찾아서>(9)경남 진주의 솔숲 / 전영우(산림자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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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6일(화) - 문화일보 - 소나무 장례식장에서의 격론-경남 진주의 솔숲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긴 알았어도 마땅한 대처 방법은 없었다. 그 생각만 하면 할배소나무는 오늘도 답답할 뿐이다. 멋 진 수염을 가진 하늘소 몇 마리가 주변에 얼쩡거렸지만 괘념치 않았다. 물이 오른 손자소나무의 줄기를 맛있게 갉아먹었을 때도 무심히 보아 넘겼다. 지난 수십년 동안 징그러운 송충이도 물리치고 몹쓸 솔잎혹파리 도 이겨낸 손자나무이기에 솔수염하늘소도 으레 이겨내리라 생각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잘못이었다. 하늘소들이 푸른 순을 갉아 먹은지 엿새만에 징후는 나타났다. 상처 난 주변의 솔잎들이 시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할배소나무는 걱정하지 않았다. 시든 몇 몇 잎들이 축 처져 있어도 설마 온몸에 이상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너무 순진했다. 스무날이 지나자 손자소나무 의 모든 솔잎들이 시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마침 내 잎이란 잎은 모두 붉은 색으로 변했고, 죽음의 징후는 현실로 나타났다. 5월만 해도 손자소나무는 푸름을 자랑했다. 새순을 한 자 이상 키워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뻤다. 세월이 지나면 훌륭한 동량재 가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청청한 손자소나무가 한달 사 이에 말라빠진 몰골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할말을 잊었다. 하긴 손자소나무만 당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많은 소나무 가 족들이 식솔을 잃고 망연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슬픔을 내세울 입장 도 아니었다. 그러나 더 원통한 일은 오히려 다른 데 있었다. 일꾼들이 몰려왔다. 기계톱이 굉음을 내면서 온몸이 붉게 변한 손자소나무의 둥치를 잘랐다. 60여년 자란 소나무의 역사는 한순 간에 끝났다. 일꾼들은 자른 줄기를 토막내기 시작했다. 줄기뿐 만 아니고 가지도 잘랐다. 그리고 자른 나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은 후, 농약을 쏟고 비닐로 단단히 덮은 후 훈증처리를 하는 모습이 마치 소나무를 장례 지내는 의식처럼 보였다. 곳곳에 솔무 덤이 생겨나고 있었다. 줄기를 잘게 토막내는 일꾼들의 작업을 지켜보는 할배의 심정은 비통했다. 아니 이럴 수는 없다. 송충이나 솔잎혹파리의 피해를 본 소나무들도 이런 대접은 받지 않았다. 적어도 재목으로서의 마지막 체통은 지킬 수 있었고, 소나무란 이름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었다. 비록 생명은 다했을망정 기둥으로 들보로 한몫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수염하늘소가 준 피해는 그런 자존심조차 없애버렸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기에 이런 짓을 하는 지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은 솔숲에 몰려온 다양한 사람들의 격 론으로 풀렸다. 죽어가는 솔숲을 지키고자 현장에서 벌어진 토론은 흥미로웠다. 산림행정가와 병충해 전문가도 있었고, 환경운동가와 산주도 참 여했다. 먼저 병충해 전문가가 말문을 열었다. 솔잎이 시들고 붉 게 변한 이유는 소나무재선충(材線蟲)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워낙 작아서 맨눈으로 볼 수도 없는 이 선충은 솔수염하늘 소와 공생관계에 있으며 하늘소가 새순을 갉아먹을 때 소나무 몸 체에 침입한다고 했다. 침입한 한 쌍의 소나무재선충이 스무날만 에 20만 마리로 늘어나며 영양분과 물의 이동통로를 파괴해 잎을 시들게 하고, 종국에는 붉게 태워 죽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 배소나무는 진저리를 쳤다. 병든 나무를 토막내어 훈증처리를 하 는 것은 다른 소나무로 소나무재선충을 전파시키는 솔수염하늘소 를 방제하기 위한 방책이란 설명을 듣고, 할배소나무는 손자가 소나무로서의 체통도 지키지 못하고 무덤 속에 갇혀버리게 된 이 유도 마침내 알게 되었다. 소나무재선충을 방제하는 데는 일손이 많이 가는 훈증처리보다 항공방제가 더 효과적이라는 병충해전문가의 보충설명은 조용하 던 숲을 일순 격론의 도가니로 변모시켰다. 먼저 환경운동가의 반대가 있었다. 환경운동가는 “항공방제에 따른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에 비해 재선충 방제효과는 크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항공방제의 부당성을 논박했다. 특히 “잔류농약이 생태계에 끼치는 여러 가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하면 도저히 항공방제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환경운동가는 농약살포로 숲에 서식하는 조류나 곤충, 근처 하천의 수서곤충이나 어류가 폐사하거나 그 밀도가 감소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병해충전문가는 “방제효과가 입증됐을 뿐 아니라 저독성 농약을 사용해 부작용은 적다”는 입장을 밝혔 다. 덧붙여 소나무재선충 피해림을 대상으로 항공방제를 실시한 2차년도에 생태계의 영향을 조사했더니, 숲이나 하천에서 서식하 는 생물의 밀도 감소현상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음을 구체적인 수치로 설명했다. 이에 산림행정가는 고무되었다. 그는 특히 부산에서 겪은 뼈아픈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토론에 불을 지폈다. 198 8년 부산 금정산에서 최초로 발생한 이후 그 동안 지속적인 방제 로 소멸단계에 있었으나, 항공약제 방제가 생태계 파괴라는 환경 단체의 주장에 밀려 방제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1998년 272ha였??피해면적이 2002년도에는 3186ha로 4년 동안 10배 이상 급속하 게 확대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산림행정가의 주장에 힘을 보태려는 듯 병충해전문가의 보충설명 이 이어졌다. 솔잎혹파리나 다른 해충과 달리 소나무재선충에 감 염되면 살릴 방법이 없고, 1년 이내에 모두 죽기 때문에 소나무 에게 가장 두려운 해충이라는 설명에, 할배소나무는 이 병을 ‘ 소나무 에이즈’로 부르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잡지 못하면 20년 이내에 국내에서 소나무가 사라질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결론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선고였다. 마침내 산주가 입을 열었다. 돼지 콜레라가 번지면 정부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적극적인 방제를 하는 한편, 도축 돼지는 시가 로 보상도 해준다. 그러나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베어낼 경 우, 아무런 보상도 없다. 산주가 이런 차별 정책을 펴는 이유를 따졌을 때,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산림당국의 부족한 예산타령, 환경문제를 제기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소극적 대처가 결국 병을 키우고 확산시켜 소나무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있다는 산주의 원 망으로 솔숲의 토론은 끝났다. 소나무 무덤이 즐비한 솔숲을 거닐면서 소나무의 입장이 되어 항 공방제에 대한 찬·반 주체들이 제기한 주장을 한번 곱씹어 봤다 . 수백만년 된 생존 터전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나무 의 입장이 되어 봤다. 이 땅에 이보다 더 큰 생태계 재앙이 있을 까? 하나 분명한 사실은 시민사회가 합심하여 민족수를 살리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었다. / 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 ychun@kookmi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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