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소나무를 찾아서>(16)北이 천연기념물 지정한 美松군락 / 전영우(산림)교수

2003년 6월 20일(금) - 문화일보 -



“창터 솔밭에 뽀얗게 송홧가루가 피어오른다. 연기처럼 피어올라 안개처럼 휘감는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숲 바닥을 노랗게 적신다. 날 듯 말 듯한 송진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버스를 타고 지나온 창터 솔밭이 못내 아쉬워 아주 천천히 신계사 터를 걷는다. 솔밭 언저리에 남아 있는 소나무일 망정 그 멋진 모습을 가슴에 가득 심기 위해서 마음으로 새긴다. 씩 씩한 기상과 굳건한 절개를 상징하는 우리 소나무의 원형을 오래 오래 간직할 듯이 보고 또 본다.”
몇 해 전에 금강산을 찾던 길에 썼던 감회를 새롭게 되새겨본다. 그러나 아쉬움은 여전하다. 특히 사스 문제로 금강산 관광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형편에 금강산 소나무 이야기를 무한정 미룰 수 없는 형편이다. 조만간 연재를 끝내야 할 지면사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창터 솔밭은 북한의 천연기념물 416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곧은 모습으로 기품 있게 자라는 빼어난 자태 때문에 미인송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강원도나 경북 의 울진·봉화지방에서 곧게 잘 자라는 소나무를 금강송(金剛松) 이나 강송(剛松)이라고 부르는 내력도 창터의 소나무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같은 지역형이기 때문이다. 금강송(강송)이란 별칭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송목(松木), 황 장목, 송전(松田) 따위의 소나무와 관련된 용어는 고문헌에서 쉬 찾을 수 있지만 금강송이나 강송이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금강송은 우리 조상들이 창안한 소나무의 별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금강소나무라는 용어는 일본인 산림학자 우에키 호미키(植木秀幹 ) 교수의 1928년 논문, ‘조선산 소나무의 수상(樹相) 및 개량에 관한 조림학적 고찰’에서 유래되었다. 이 논문에서 우에키 교 수는 개마고원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소나무 를 6개의 지역형, ‘동북형(東北型)’, ‘중남부 고지형’, ‘중 남부 평지형’, ‘위봉형(威鳳型)’, ‘안강형(安康型)’ ‘금강형(金剛型)’으로 분류했다. 동북형은 함경도 일대의 소나무, 중남부 평지형은 인구 밀집지역 에서 굽었지만 가지들이 넓게 퍼져서 자라는 소나무, 중남부 고 지형은 중남부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소나무, 위봉형은 전북 일부 지역에 자라는 소나무, 안강형은 경주와 안강 주변의 가장 볼품 없이 굽고 못생긴 형태로 자라는 소나무, 그리고 금강형은 강원 도와 경북 북부지역의 줄기가 곧고, 아래쪽 가지 없이 상부에만 가지들이 좁은 폭으로 자라는 소나무로 분류했다. 따라서 금강소나무 또는 금강송은 우에키 교수의 ‘금강형’에서 유래되었으며, 강원도 금강군에서 경북 울진, 봉화, 청송에 이 르는 강원도 산악지역 및 동해안에 자라는 소나무들을 일컫는 지역형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외금강 창터의 소나무들이 금강송이란 별칭의 유래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아쉬운 점은 우에키 교수가 우리 소나무를 6지역형으로 분류한 지 75년이 지났지만 임학계에서는 아직도 이 틀을 변경하거나 또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제시하는 연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지역형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없었을지라도 금강소나무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계속된 사실은 그나마 우리 소나무를 위해서 다행 스러운 일이다. 한편 학계의 일각에서는 1960년대에 들어 금강소나무의 우수성을 규명하고자 유전적 연구를 시작했다. 일부 학자들이 초기에 금강소나무의 우수성을 소나무와 곰솔(해송)의 잡종강세 때문인 것 으로 발표했지만, 추후 연구 방법상에 문제가 있어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에 수행된 연구는 금강소나무가 다른 소나무와 비교했을 때 ‘품종’으로 인정할 만한 유전적인 차이가 없음을 밝 히고 있다. 품종이란 바로 ‘우수성, 균일성, 영속성이 유전적으 로 보존되어 고유의 특성이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단위’ 아니던가. 그럼 금강소나무는 왜 다른 지역의 소나무와 비교하여 줄기가 통 직하고 세장(細長)하며, 수관(樹冠)이 비교적 좁고 지하고(枝下高·지면에서 수관의 아래가지까지의 높이로 높을수록 더 좋다) 가 높으며, 재질은 치밀하고 연륜폭은 좁은 형질을 가지고 있을 까. 학계의 일각에서는 그 답을 지리적 생장 환경에서 찾고자 시도했다. 좋은 나무만 골라 베어내던 인구 밀집지역과는 달리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우량목만 선택적으로 벌채하지 않았던 곳으로 상정할 수 있다. 또 금강소나무가 자라 는 이들 지역은 일반적으로 강우량이 많고, 습도 역시 높으며, 태백산맥의 능선부, 서쪽 사면, 산림생태계의 파괴가 적은 곳으로 소나무 생육에 적합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안강형 소나무와의 비교에서 그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금강형 소나무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안강형 소나무는 산림생태계의 파괴가 극심했던 경주 인근의 지역에 자라는 줄기 가 굽어 있고, 수관이 빈약한 볼품 없는 소나무를 말한다. 또 경주와 안강 지역은 여름철 강우량이 제일 적고, 6월과 7월의 온도 교차가 가장 심한 지역으로, 수목 생장에 좋지 않은 환경임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별개로 학계에서는 지리적으로 10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경북 청송의 소나무와 경주의 굽은 소나무가 형태적으로 차 이가 심한 이유를 신라인들이 숲을 이용하던 양태에서 찾기도 한다. 다른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신라 역시 문명발달을 위해서 숲 을 희생시켰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궁궐과 집을 짓고자 곧고 좋은 소나무만 줄곧 골 라 썼기 때문에 남아 있던 좋지 않은 나무에서 씨가 떨어지고, 그 자손 중에서 또 좋은 나무는 베어지고 나쁜 나무는 남아 씨를 남기는 일이 1000년이 넘도록 반복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경주 인근에서는 굽고 못생긴 소나무들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창터 솔밭의 풍광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어느 틈에 솔잎을 가르는 바람소리(頌聲)가 귓가를 맴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짙은 녹색 솔잎과 붉은 껍질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눈 속으로 파고든다. 송진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그 솔숲을 거닐어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 ychun@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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