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효용 다한 국립대학 체제 / 김동훈 법대 학장

2003년 7월 31일(목) - 경향 -



필자는 약 1년 전, 뜻이 맞는 학생·교수들과 같이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그 내용은 국가가 국립대학을 편파 지원하여 사립대학을 차별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특히 사립대학 재학생들은 국립대생보다 두 배 이상의 등록금을 내면서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청구서에서 필자는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에 대한 차등적인 재정 지원(대학 운영비 중 국고 보조는 국립대학이 약 60%, 사립대학이 4%임)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로 현재 일반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동일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완전한 경합관계에 있다는 점,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은 필연적으로 대학 간 불공정 경쟁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편파적 재정지원 ‘불공정’-


이에 대해 교육부는 답변서에서,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은 경제적·지리적 이유로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조성적(助成的) 행정행위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이 오늘날의 상황에 전혀 맞지 않음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표적 국립대학인 서울대에는 압도적으로 상류층의 자제가 입학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국립대학이 대도시에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본래 국가가 국가기관의 일부로서 대학을 운영하는 체제는 일제의 유산이다. 일본은 근대화 초기에 각 분야의 국가 엘리트를 집중적으로 양성할 목적으로 직접 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1877년 설립된 도쿄대학이 첫 번째 제국대학이 되고, 이어서 교토·도호쿠·훗카이도·규슈 순으로 제국대학을 세우고 나서, 식민지였던 한반도에 1924년 게이세이(京城) 제국대학, 그리고 대만에 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일제의 대학 설립 이념은 1886년에 제정된 제국대학령 제1조 ‘제국대학은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는 학술과 기예를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 한마디로 교육의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대학이 철저히 국가 목적에 봉사하고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는 도구인 셈이다. 근래 일본에서도 이러한 국가 관리의 대학 체제에 대해 ‘문부성에 의한 호송선단’ ‘후진국형 또는 전제주의 국가형 국가통제 교육시스템’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국가 중심주의 일본 대학체제도 세계화 시대에 버티지 못하고 급격한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9일에는 ‘국립대학법인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제 내년 4월에는 모든 4년제, 2년제 국립대학이 89개 법인으로 민영화돼 새로 출발하게 된다. 정부 통제를 받는 대신 정부 지원 아래 안주하고 있던 대학들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과 수업료 등을 결정하고 수익사업도 할 수 있는 반면, 매년 외부기관 평가를 받아 성적에 따라 정부 지원금을 받는 등 치열한 경쟁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번 국립대학 법인화는 1886년 제국대학령 공포와 1949년 신제 국립대 발족 이래 최대의 대학 개혁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대학 개혁은 일본 대학체제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그 핵심은 국가가 직접 국가 예산으로 다수의 일반 국립대학을 직영하는 체제는 그 효용을 다했다는 것이다. 국가 주도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은 경제계뿐만이 아니다. 세계를 무대로 경쟁해야 하는 고등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국립대학이 국가의 행정·재정 지원을 등에 업고 민간 위에 군림해온 국립 우위의 대학 체제로는 우리 고등교육의 경쟁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특수 목적을 가진 대학을 제외하고는 국립대학을 국가의 후원과 통제 양면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사립대학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


-日도 국립대 민영화 조치-


마침 얼마 전, 헌법재판소로부터 필자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하(却下)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사립대학의 재학생이나 교수는 간접적·반사적 이해관계자에 불과하여 이른바 ‘자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립대학의 경영주체인 대학법인이 그런 주장을 한다면 자기 관련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바라건대 용기있는 사립대학법인이 나서서 국가의 국립대학 재정 지원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얻어낸다면 우리의 대학 개혁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낼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김동훈/국민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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