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손영준의 퍼스펙티브] 디지털 기업 변신한 NYT, 고품질 저널리즘으로 승부 / 손영준(언론정보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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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심각한 위기 상황 경험 위기 겪던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신 성공 비결은 1851년 창간한 뉴욕타임스의 미국 뉴욕 본사 건물. [AFP=연합뉴스] 저널리즘이 위기인 시대다. 디지털화로 정보량은 폭증하고 매체는 다양해졌다. 반면에 사회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갈수록 신뢰를 잃고 있다. 신문과 방송 같은 전통 매체의 존재감은 동반하락하고 있다. 사람들은 페이스북·트위터 온라인 공간에서 각자의 의견을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심각하다. 뉴스는 각자의 주장을 위해 동원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뉴스는 더는 모두를 밝히는 등불이 아니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더 본질적인 데 있다. 진실과 사실은 원래부터 없다는 탈진실(脫眞實)의 주장이 강화되고 있다. 이 시각에 따르면 저널리즘의 역할은 진실을 찾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더 유용한 것이 있으면 진실로 숭상된다. 내일이 되면 내일의 진실이 있다고 본다. 진실은 새롭게 창조·진화하며, 정치적으로도 합의된다. 이런 탈진실, 실용주의(Pragmatism) 입장에 따르면 어제의 진실과 오늘의 진실은 다를 수 있다. 이런 입장에 서면 공론장에서 합리적 숙의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언론마다 다른 위기 대응 방식 최근 몇년간 유료 독자가 급증하면서 이미 470만명을 돌파한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초기 화면. [NYT 캡처] 저널리즘 위기 상황에서 기존의 저널리즘은 상이한 노선을 걷고 있다. 첫째 방향은 탈진실을 전제하고 뉴스의 정파성(政派性)을 강화한다. 뉴스와 사설을 혼용한 ‘의견 저널리즘’(Opinion journalism)이 중심이다. 미국의 보수 매체인 폭스 뉴스(Fox news)는 정파적 보도를 통해 자리 잡았다. 특정한 시각과 해석 틀을 관철하는 저널리즘이다. 진실은 정치적으로 협의된다고 보기에 뉴스를 통한 정파적 입장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방향은 디지털 환경에서 보도의 투명성과 검증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독자나 시청자에게 질 높은 정보를 설득력 있게 제공해 진실과 사실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객관 보도 방식이 실천적 도움이 되지 못함에 따라 정보 제공의 투명성과 검증성·전문성을 높여 독자 신뢰를 회복하는 방식이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각국의 권위지가 대표적이다. 이 방식도 주관적 입장을 바탕으로 하지만 다양한 사실관계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투명하게 제공한다는 점이 다르다. 뉴스는 전문적인 지식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제공된다. 오늘날 각국의 저널리즘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정파적 저널리즘과 투명한 검증의 저널리즘이 혼재해 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 최신호(10월 21일 자)에서 뉴욕 타임스의 디지털 뉴스 혁신 성공 사례를 심층 보도했다. 1851년 창간해 올해 168주년을 맞는 뉴욕 타임스는 지난 2008년 미국 경제위기 때만 해도 뉴욕 맨해튼에 있는 본사 건물을 일부 매각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매출이 급감하고 적자가 쌓이는 악순환 상황이었다. 경제 불황만이 이유가 아니라 신문 산업의 근본적 취약 구조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저널리즘의 전통이었던 뉴욕타임스도 디지털 언론 환경에서 결국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었다. 그러던 뉴욕타임스가 불과 10년 만에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2019년 10월 현재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수가 470만 명을 기록했다.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종이신문을 보는 독자는 3분의 1밖에 안된다. 10년 전 종이신문 절독률이 한해 20%에 달해 미래를 걱정하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매출과 영업이익, 디지털 구독자가 모두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제 종이 신문사가 아니다. 디지털 회사다. 뉴욕타임스의 부활은 가업을 이은 젊은 발행인 아서 그레그 설즈버그(39)의 디지털 혁신이 성공 열쇠라고 타임은 지목했다. NYT, 뉴스데이터 최대한 시각화 아서 그레그 설즈버그. [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고품질 저널리즘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단순 뉴스 생산자로서는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퀄리티 저널리즘을 지향했다. 사람들이 내는 돈에 비례해 뉴스 질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지 않았다. 설즈버그 발행인이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돈을 내고 싶은 저널리즘을 해야 한다”고 말한 의미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저널리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완성도 높고 정제된 뉴스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도자료를 피상적으로 베낀 기사는 없다. 취재원이 알려주고 싶은 내용만을 담은 기사도 없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기사가 중심이다. 중요한 기사는 속보가 아니어도 종일 앱 상단에 배치된다. 뉴스데이터는 최대한 시각화한다. 인터렉티브, 멀티미디어 접근법 등 다양한 형식과 스토리를 통해 만족도를 높인다. 잘 차려진 밥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가 2014년 발행한 ‘혁신 보고서’를 보자.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를 주창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기사는 여전히 오후 늦게 출고된다”, “모바일 앱은 종이신문을 답습한다”, “편집국은 소셜 미디어 전략에 신경쓰지 않고 종이 신문 중심의 제작 전통을 답습한다”는 등의 자기비판을 쏟아냈다. 오늘의 성공은 이런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한 결과다. 둘째, 디지털 유료화 전략을 선도적으로 실현했다. 저널리즘 품질 못지않게 데이터에 기반을 둔 독자 관리에 공을 들였다. 고품질 저널리즘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디지털 유료화와 ‘충성 독자’ 확보 등의 비즈니스 전략을 구사했다. 충성 독자에게 최적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뉴스팀과 마케팅팀이 상시 협력했다. 디지털 독자의 최근 방문 시기(Recency), 방문 빈도(Frequency), 콘텐트 이용량(Volume) 등 ‘RFV 데이터’를 통해 뉴스 콘텐트가 독자의 온라인 방문 습관을 형성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연구하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했다. 셋째, 뉴스 제작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더 좋은 저널리즘을 만들고 경쟁력 있는 기자를 보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고 기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줬으며, 스카우트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좋은 기사를 쓰는 사람을 발굴해 회사의 간판으로 삼았다. 경영악화로 2014년 직원 수가 1100명까지 감소했다가 디지털 유료 모델이 성공하면서 올해 1500명으로 증가했다. 정파적 뉴스 제작 관행에 시사점 뉴욕타임스의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은 한국 언론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고품격 저널리즘은 정파적 뉴스 제작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정파적 보도를 통해 이념을 전파하고 일정한 상업적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 폐해는 심각하다. 정파적 언론의 파편화된 뉴스는 공론장을 오염시킨다. 투명성·전문성·합리성을 통한 고품격 저널리즘은 미디어의 신뢰를 높이는 처방이다. 뉴스 제작의 투명성은 제작 방법·동기·과정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전문성은 해당 분야에 대한 폭넓은 종합 정보를 통해 보도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뉴욕타임스 사례는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 회복을 통해 재정적 고충이 해소될 수 있는 선순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뉴스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포털과의 불평등 관계를 재정립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포털의 약탈적 과점(寡占) 체제가 지속하는 한 저널리즘 정상화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셋째, 독자나 시청자 중에 상당 수준의 전문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뉴스의 전문성은 필수적 덕목이다. 낮은 전문성을 알리는 징표는 한국 언론의 뉴스 길이가 대단히 짧은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와 비교할 때 한국의 경우 뉴스 한 꼭지가 담고 있는 정보량은 매우 적다. 온라인 환경에서는 지면의 제한을 받지 않는데도 기사 길이가 짧다는 것은 한국 언론인들이 단순 뉴스 생산에 내몰린다는 증거다. 사람에겐 좋은 뉴스가 필요하다. 언론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사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뉴욕타임스가 선택한 ‘저널리즘 가치에 충실하고 재정적으로 탄탄한’ 전략에서 한국 언론이 배울 점은 없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그리고 도전적으로 실천하자. 한국 언론의 발전과 공론장의 정상화를 위해서….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s://news.joins.com/article/23613425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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