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저 눈빛! 10萬 팬을 녹였다 / 탤런트 이완 (본명 김형수, 체육)
2004년 04월 08일 (목) 16:00

지난해 여름 탤런트 김태희와 이완(19), 이장수 감독이 마주 앉았다. 이 감독은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준비 중이었다. 이날 모임은 이 감독이 김태희 수첩 속에 있는 동생 이완의 사진을 보고 이뤄졌다. "느낌이 좋다"며 만남을 청한 것이다. 저녁 식사 내내 집요한 탐색이 진행됐다. 표정.목소리.제스처까지.

그리고 이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설 무렵 "내 작품에 출연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완으로선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길이었다. 망설이는 그에게 이 감독은 "내가 찍은 남자(이병헌.정우성 등) 는 다 스타가 돼"라는 결정적인 말로 교통정리를 했다. 일찌감치 국민대(체육학부) 얼짱으로 유명했던 그가 바야흐로 전국 무대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이었죠. 남 앞에 나서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왠지 거부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마치 운명처럼."


감독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단 3회였다. 초반에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인데도, 이완은 슬프고도 강인한 눈빛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흔들어놨다. 자폐증에 가까운 태화(신현준)의 불안과 우수,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을 표정으로 녹여냈다. 게다가 매끈한 얼굴과 탄탄한 몸매라니. 그는 단숨에 인터넷 카페 300여개, 회원 10만명이 넘는 팬을 거느린 '벼락 부자'가 됐다.


"운이 좋았죠. 대사가 많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지 몰라요. 눈빛 연기는 좀 자신있었거든요. 어렸을 적부터 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물론 누나의 격려도 힘이 됐고요."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실력. 그 속력만큼 인기의 상승 곡선은 빨랐다. '천국의 계단'이 끝나기 무섭게 KBS 월.화 드라마 '백설공주'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이다. 연기 입문 6개월 만이다. 이것으로 모자라 오는 24일부터 방송될 SBS 주말극 '작은 아씨들'에서도 역시 주연급 역할을 맡았다.


"연기 공부를 할 시간도 없어요. 실전이 곧 연습이죠. 감독님께 많이 혼나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연기란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TV로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직접 해보니 장난 아니에요. "


'백설공주'에서 그는 탤런트 연정훈과 한 여자를 두고 사랑을 다투는 '선우' 역을 맡았다. 물론 분위기는 '천국의 계단' 때와 전혀 다르다. 코믹과 냉소, 반항기가 고루 버무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출연을 결심하자 선배들은 하나같이 말렸다고 한다. '천국의 계단'에서의 우수어린 눈빛 하나 가지고서도 잘만 유지하면 3년은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모험을 하느냐는 충고였다.


"제 성격이 원래 도전적이거든요. 평소엔 조용하지만 한번 결심하면 절대 마음을 돌리지 않아요. 어차피 새로운 영역에 들어온 만큼 남이 다니지 않는 길을 뚫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대본을 읽고 마음이 확고해졌어요. 배우인 제가 읽어도 재미있더라고요."


평소 말을 잘 못해 고민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대목만큼은 또렷또렷하다. 이완이란 이름을 지은 배경만 봐도 그의 성격이 묻어난다. 이완이란 예명(본명 김형수)은 스스로 지었다. '물랑루즈'의 이완 맥그리거와 조선 효종 때 북벌정책을 이끈 훈련대장 이완에서 따 왔다고 한다. 이완 맥그리거는 그렇다치고 웬 장군?


"왠지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이에요. 대범한 성격에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지조, 그리고 말 먹이를 직접 줄 정도의 자상함과 소탈함까지. 연예계란 미지의 땅에 들어오면서 이완 장군과 같은 삶을 살리라 결심했죠."


현재 이완은 드라마 PD들이 탐내는 '캐스팅 0순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이완은 "실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반짝 인기로 끝날 것"이란 이치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쉽게 오른 만큼 쉽게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측 못했던 인생이 펼쳐졌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제 조금씩 장기적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다른 쪽은 안 보고 일단 드라마에 전념한 뒤 궤도가 잡히면 영화배우로만 활동하겠다는 생각이다. 꽃미남보다는 설경구.최민식 선배처럼 선 굵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런 그가 무엇보다 이완 장군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할 텐데….


글=이상복 기자 jizh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 sunnine@joongang.co.kr >


이전글 이기고 싶다면… 승자처럼 가슴 펴고 당당히 코스를 걸어라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다음글 ‘빗방울화석’ 동인 금강산 시화전을 마치고 / 신대철(국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