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감성 25시] 공연기획·연출가 정성한 (기계 52회)

[주간한국 2005-03-28 19:13]

서울의 명동 펑키 하우스에서는 쇼와 코미디와 아카펠라가 어우러진 ‘ 쇼콜라’ 가 한창 진행중이다. 쇼콜라는 컬서트(컬트 삼총사 + 개그 콘서트), 쇼 뮤지컬(쇼 + 뮤지컬)과 같은 신조어를 거듭 탄생시켰던 전 컬트 삼총사의 멤버 정성한이 기획ㆍ연출한 이색적인 공연이다.

정성한은 대학로 아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아카펠라 그룹 다이아(D.I.A)에게 개그적인 재능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고 펑키 하우스에서 공연을 하지 않겠냐고 선 듯 제안했다. 아카펠라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깬 인기 그룹 다이아와 정성한은 일년 전부터 쇼콜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꼼꼼히 준비해 왔다. 그들은 궁합이 잘 맞는 배우와 연출가인 셈인데 다이아(D.I.A)에게 아마추어의 옷을 과감히 벗기고 쇼와 코미디라는 새 옷을 입힌 것은 쇼 감각을 타고난 정성한, 그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DJ 미스터 펑키'로 끼 발산

정성한, 그는 이제 개그맨이 아니다. 컬트 삼총사 해체 이후, 그는 명동 코리아 극장을 개조해 뮤지컬 전용 극장 펑키 하우스를 만들고 ‘쇼 뮤지컬’ 이란 새로운 장르에 도전, 공연 기획ㆍ연출가로 변신했다. 순수 창작 뮤지컬 ‘펑키 펑키’에서는 극본과 연출을 도맡아 하고 객석과 무대를 연결해 주는 ‘DJ 미스터 펑키’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끼를 멋지게 발휘하기도 했다. 그 결과 1,000일 동안 6가지 형태로 바뀌며 진행할 예정이었던 ‘펑키 펑키’가 벌써 1년 5개월의 장기 공연을 맞이했다. 브로드웨이처럼 관객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공연을 볼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도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성한이 빠지고 나서 이름을 바꾼 ‘컬투’가 ‘생뚱맞죠’, ‘그 때 그 때 달라요’라는 유행어로 안방을 꽉 차지하고 있는 요즘, 예전 생활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공연 기획자와 연출가로 대중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자신의 천직”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컬투의 인기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예요. 컬트 삼총사 시절 개그 콘서트를 하면서 10년 동안 쌓아 온 실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거죠. 힘든 시절도 많았었는데 육화된 개그가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서 빠져 나오는 겁니다” 라며 컬투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컬트 삼총사 해체 이후 그는 방송사의 출연 섭외를 거절해 왔다. 각 방송사에서 따로 활동하는 모습이 서로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연기획자와 연출가로 인정을 받은 뒤에 방송에 출연해도 늦지 않을 거란 낙관적인 생각이 있었다.

개그맨인 그가 공연 기획ㆍ연출가로 활동하는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울만한 일은 아니다. 컬트 삼총사 시절 개그 콘서트를 기획한 것은 바로 정성한이다. KBS ‘개그 콘서트’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어느 그룹이 콘서트를 하는데 노래할 때는 지루한데 중간 중간 기는 이야기를 하니까 박수 치며 좋아하는 거예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그가 개그로 콘서트를 한다고 했을 당시 반응은 한결 같이 시니컬했다. 모두가 비웃었지만 그에겐 확신이 있었다. 지방 10개 도시에서 무료 콘서트를 하면서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현장에서 몸소 느낀 것이 있었다. 그런 체험은 그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개그 콘서트를 비롯, 웃찾사 같은 콘서트 형식의 개그가 10년이나 안방을 독차지하는걸 보면 그에게 타고난 기획 감각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 때부터였을까. 불모지를 개척하듯 새로운 시도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관객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다

미국에서 세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디스코로 각색한 ‘더 덩키쇼’를 보던 그는 ‘바로 저거야’ 하며 무릎을 탁 쳤다 한다. ‘춘향전’ 모티프에 코미디와 쇼 형식을 가미한

한 쇼 뮤지컬 ‘펑키 펑키’ 는 그렇게 탄생했다. 뮤지컬에 쇼 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의 새로운 흐름이지만 국내 창작 뮤지컬은 아직 시도되지 않은 일이었다. 쇼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관객을 무대위로 끌어들여 함께 쇼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쇼콜라’도 마찬가지다. 오페라의 유령, 미녀와 야수, 그리스, 라이온 킹 등 뮤지컬 넘버를 아카펠라로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다가 씨엠송부터 가요까지 재치와 위트가 번득이는 100곡 메들리는 시도 자체가 존경스럽다. 다이아(D.I.A)가 관객에게 보답하는 특별 보너스로 퀸의 음악을 아카펠라로 편곡한 ‘아카펠라 퀸’은 그것이 ‘퀸’이어서 더 감동적이다. 쇼에 익숙치 않은 관객조차 손을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힘이 ‘쇼콜라’ 에겐 있다.

“쇼는 숨어있는 열정을 끄집어내기도 하죠.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그들이 좋아할만한 것들, 맘 편히 웃고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안방같이 藉훌?공연이었으면 좋겠어요,”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과 내가 하면 가능하다는 의지. 그는 후자를 선택해 왔다. 세상에 안 될 일은 없다는 것, 아직 시도되지 않아서 누군가 처음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는 과감히 먼저 손들 사람이었다.

이런 시도는 정성한이 대학교 때부터였다. “친구와 내기를 했죠. 여대에 아무 제한 없이 들어간다면 그날부터 저를 스승으로 모신다는 거예요.” 정말이지 ‘정성한다운’ 이유다. 거짓말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근사한 시놉시스를 만들었다. 그는 이벤트 하나를 꾸며냈다. S여대 서양화과 학생들의 미술 작품이 국민대 공과대 로비에 진열된 전시회는 그의 일생에 첫 번째 기획의 시작이었다. 대학교 축제가 평범하고 재미없는 것에 싫증이 난 그는 아무 직책 없는 학생의 신분으로 국민대 제 1회 용두리 가요제를 열기도 했다. 가수섭외는 물론이고 무대 설치, 음향장치 등 사비를 들여서 손수 가요제를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총학생 회장 선거에 나가는 친한 형을 밀어주기 위해 홍보 역할을 했던 그는 선동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학생들을 거북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어깨동무 학생회’라는 로고를 만들어 다정다감하고 진실 된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물론 그 형이 학생회장이 되었고 저는 학생회에서 문화국장직을 맡게 되었어요.” 그후 국민대에는 이색적인 문화행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 시내의 음대, 미대, 의상학과를 초대해 열린 음악회 형식의 연주회와 미술 전람회, 패션쇼 등 다양한 이벤트 행사를 진행시켜 예대가 없던 국민대에 문화의 옷을 입히기도 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 뱅크

‘가끔 깜짝 놀랄 이벤트가 없다면 숨 막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성한이 기획하는 공연을 보러가라고 권하고 싶다. 리무진으로 관객을 모셔오는 ‘리무진 서비스’, 사랑하는 연인에게 청혼한 후 다이아(D.I.A)의 주례로 식을 올리는 ‘깜짝 웨딩마치’, 공연을 보고 재미만큼 돈을 내는 ‘후불제 공연’ 등 그가 기획한 공연은 그만의 깜직한 아이디어가 반짝 하고 빛난다.

여행사 이사이기도 한 그는 여행을 통해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인생은 이벤트죠. 저는 대중에게 즐거운 이벤트를 선물해 주고 싶어요. 함께 즐겁고 함께 행복했으면 해요.”

그래선지 공연 입장료는 만원에서 이만원 사이로 부담없는 가격이다. 그가 마련한 이벤트는 명동의 펑키 하우스에 가면 원할 때마다 볼 수가 있다.


쇼콜라 공연 시간: 매주 화~일 / 평일 8시, 주말 4시,7시 주최: ㈜쇼비티 02-319-9880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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