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이경훈] 욕망의 공간 발코니 확장/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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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이 중요한 질의를 했다. 건설사가 일부러 발코니 확장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구조가 안 나오도록 설계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입주자 98.7%가 확장을 선택해서 5개 건설사가 지난 5년간 발코니 확장으로 올린 매출만 2조4000억원이 넘었다는 수치도 공개했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고 장관의 답변도 실태 조사를 해서 대책을 세우겠다는 정도로 밋밋했다. 건설사의 부당이득에 집중되어 문제의 핵심을 완전하게 짚지는 못했지만 지난 10여년간 건축, 도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제기였다고 생각한다. 발코니는 있지만 없는 유령이며 신기루 같은 공간이다. 원래는 건축물에서 허공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말한다. 바닥이 있고 윗집 바닥을 지붕 삼아 발코니 외곽에 새시를 설치하면서 불법 확장의 역사가 시작된다. 벽을 막으면 건축면적에 포함되니 당국은 단속하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내 집 발코니를 막아 쓰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냐고 반발했고 실제로 사유공간을 단속하기도 어려웠던 당국은 2006년 발코니 확장을 묵인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주민들은 환호했고 관료들은 골칫거리를 덜어냈으며 건설사들은 새 일감을 찾았다고 쾌재를 불렀다. 시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욱 탐욕스레 확장을 전제로 한 평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평면구조는 점점 기형적으로 변해갔다. 발코니가 많을수록 확장할 수 있는 면적이 커지기에 남쪽을 향해 넓적하게 벌어지고 대신 건물은 얇아졌다. 김 의원 지적대로 확장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아파트가 될 수 없게 됐다. 원래 건축허가를 받은 평면으론 방에 가구를 들일 수 없고 부엌에 냉장고 놓을 자리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신 20평 아파트가 30평으로 불어나는 마술을 선보인다. 욕망과 포퓰리즘 행정이 만들어낸 작은 타협이지만 한국 도시에 던진 파장은 만만치 않다. 어떻게 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었는지 살펴보자 발코니 확장의 첫째 문제는 단열이나 안전 같은 직접적인 폐해다. 외부의 공기와 접하는 면적이 커지고 홑겹의 새시가 외벽이 되니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아파트가 된다. 특히 겨울철 난방에는 결로가 발생해 위생상으로도 불리한데도 건설사들은 이를 거꾸로 친환경적 아파트라고 광고한다. 둘째로 아파트 단지 설계는 향이나 법적 조건을 맞추는 일이 매우 까다롭다. 특히 주동 간에 일정 거리를 띄어야 하는 조건이 있어 폭이 넓고 얇은 건물을 배치하는 일은 퍼즐에 가깝다. 손쉬운 해결책은 층수를 높이는 건데 도시를 총체적 관점에서 관리하는 공공의 입장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전체 단지 계획이 발코니 개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다보니 도시적, 심미적 측면은 뒷전에 밀린다. 아파트 단지는 주변과 더 이질적이 되고 도시공간은 왜곡된다. 셋째로 공간의 질의 문제다. 발코니는 한옥으로 따지자면 처마 밑이나 대청마루 같은 공간이다. 내부도 아닌 외부도 아닌 중간 공간, 즉 공간의 켜가 많은 공간이 좋은 공간이다. 새시 한 겹으로 좋은 정주공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내는 빈 벽이 남지 않아 그림 한 점 거는 것도 힘겹다. 마지막으로 법적 안정성의 문제다. 엄연히 있는 발코니 확장 공간을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외면하니 도시경관 관리를 위해 어렵사리 정한 건폐율, 용적률의 의미가 크게 후퇴한다. 실제로 발코니 확장은 20%가량의 용적률을 추가로 허용하는 효과가 있다. 이 중요한 조치가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민원에 지친 관료들의 자의적 판단으로 시행된 것이다. 발코니 확장은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달콤한 유혹이지만 사회적 토론과 합의 후 입법의 과정을 거쳐야 할 만큼 중요하다. 국토교통부는 신도시를 만들고 그에 따른 교통 계획을 세우고 분양가상한제나 투기 단속 같은 집값 대책이 전부인 일종의 경제부처처럼 보인다. 국토 공간을 계획하고 자원의 분배와 주거복지 같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본유의 업무일 것이다. 고충은 이해하겠으나 미래지향적이며 합리적인 국토 계획과 도시공간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기대한다. 한국 도시의 아파트에 문제가 있다면 그 출발은 초법적인 발코니 확장이다. 로미오가 노래를 부르는 줄리엣의 발코니 따위는 없다. 욕망의 공간이 있을 뿐. 이경훈 국민대 건축대학장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2019-11-27 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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