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70∼80년대를 거치면서 소진된 것으로 여겨졌던 리얼리즘 논쟁이 ‘논쟁은 아무리 지독한 것이라도 좋다.
’는 용인의 그늘에서 다시 불씨를 지필 태세다.
진보적 문학평론가이자 황해문화 편집주간인 김명인(국민대 대학원 겸임교수)씨가 최근 출간된 자신의 세번째 평론집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창비 펴냄)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개념의 오랜 상호의존적 이항대립은 사실 역사적인 것에 불과하기에 자명성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며 이 논쟁을 새삼 다시 들춰낸 것이다.
‘자명성의 감옥’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글에서 저자는 그간의 경위를 이렇게 짚는다.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제를 둘러싼 리얼리즘론자들 내부의 추상 수준 높은 논쟁이 썰물처럼 급격히 빠져나간 뒤…그리고 그런 경향은 일부 리얼리즘론자들의 꾸준한 단속과 경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최근에는 이른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이라는 명제가 제출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사적 유물론의 인식체계와 관련된 강한 역사의식과 총체적 세계인식의 보유’를 리얼리즘론의 강점으로 꼽은 저자는 “90년대를 경과하면서 통시적 역사인식에서도, 공시적 세계인식에서도 돌아갈 정처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리얼리즘론은 확실히 일종의 답답한 동어반복이 되고….”라며 현실적으로 드러난 리얼리즘론을 ‘벌거벗은 임금님 꼴’에 견줬다.
그가 주목한 점은 그런 리얼리즘론의 부활. 저자는 ‘창작과 비평’ 지난해 겨울호에 실린 임규찬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둘러싼 세 꼭지점’을 새로운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의 시작으로 보고, 여기에서 비롯된 최원식·윤지관·황종연 등이 평론을 통해 드러낸 견해들에 대해 ‘자못 논쟁적이고 공격적’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또 소통 가능성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명한 것’으로 선험화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개념 자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이들의 논쟁이 가지는 한계”라고 지적하고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이런 개념의 오랜 상호의존적 이항대립은 사실 ‘역사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런 ‘자명성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명성’은 더 이상의 논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개념이다.
그래서 그는 “자명한 것과 결별해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한다.
”며 이렇게 반문한다.
“과연, 아직도 문제는 리얼리즘이고, 모더니즘인가. 세계에 대한 무지도 독단도 아닌, 냉소도 절망도 아닌, 탈주도 안주도 아닌, 그러면서도 ‘이것이 아닌 선택 가능한 다른 것’을, 이 미증유의 억압과 소외로 가득한 후기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탐사 과정에서 윤리적·미학적 대안을 찾는 일에도 여전히 ‘리얼리즘-모더니즘’패러다임은 유효한 것인지 묻고 싶다.
” 1만 8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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