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옛날의 서명은 어땠을까 / 국민대박물관 <조선의 싸인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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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11-28 21:12] ‘조선의 싸인’전 ‘사인’으로 흔히 불리우는 서명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사용했을까. 사인은 서양 산물로 여겨지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조상들은 고려시대부터 문서 결재나 공증은 물론 그림, 도자기, 도량용구에 흔적을 남기려고 즐겨 서명을 썼다. 이름글자를 변형한 서명인 ‘서(書)’와 특별한 글자를 변형한 ‘압(押)’을 지위 고하에 따라 가려 쓴 것이 틀리다면 틀린 점이다. 국민대 박물관에서 12월10일까지 열리고 있는 ‘조선의 싸인’전은 ‘착명(着名)’‘수결(手決)’, 화압(花押) 등으로 불리우며 널리 쓰인 조선시대의 서명문화를 한자리에 보여주는 독특한 전시다. 자기 이름을 개성적인 필체로 써서 취향이나 성품을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서명들을 보며 당대 문서문화의 또다른 이면을 엿볼 수 있다. 출품유물들은 박물관이 소장한 ‘설촌고문서’에서 뽑은 서명들을 중심으로 모은 100여 점. 문자형(文字形), 수촌형(手寸形), 수장형(手掌形), 각압(刻押) 등의 다채로운 유형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기본적인 이름의 한자를 변형한 문자형은 19세기 경기도 유생 123명이 부평의 효자 윤국자를 포상해달라고 요청하는 청원문서에 쓰인 어사의 서명(사진)을 비롯해 호구단자류의 호적문서, 관리임명장인 교첩(敎牒), 간찰에 쓰인 서명 등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정조가 친위대조직인 별군직의 관리 이유경에게 내린 전령문서의 임금 수결은 엄숙하고 장중한 조형미가 압권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글에 어두운 서민, 천민들이 사용했던 손가락 서명이다. 문서에 손가락을 대고 모양을 그린 수촌형과 손바닥을 대고 그린 수장형이 그것인데, 집과 전답 등의 부동산 토지매매 문서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까막눈이 많은 탓에 문서 작성자가 따로 있는 것도 흥미롭다. 또 수결을 나무판에 새긴 각압은 관리들이 인장 대신 사용했던 것으로 사심없는 한마음으로 결재한다는 뜻의 ‘일심결’(一心決)이란 글귀가 눈길을 끈다. 박물관쪽은 “개인의 품성과 개성이 드러나는 서명은 조선시대 계층을 초월했던 보편적 문서문화였던 만큼 당대 사람들의 진솔한 생활관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사진 국민대 박물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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