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란코프의 북한이야기]대학 이공계 우대… 수재들 몰려

[동아일보 2004-12-13 21:36]


한민족은 교육열이 높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든, 재미교포 2세든, 러시아교포 5세든 모두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큰 명예로 여겨 자식을 그런 학교에 보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북한도 비슷하다. 북한 사람들도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명문대에 가는 것을 성공적인 인생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1980년대 초까지 북한은 출신 성분을 중심으로 입학생을 선발했다. 입학 희망자들은 도 시 군 대학추천위원회에서 추천을 받아야 대입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는데, 추천위원회는 입학 희망자의 가족 및 친인척의 성분을 조사해 ‘동요계층 출신’은 명문대 입학 기회를 제한했고, ‘적대계층 출신’은 아예 모든 대학 응시자격을 박탈했다. 할아버지가 1930년대에 어떤 식민지 기관에서 사무원을 지냈다는 것 때문에, 1946년 토지개혁 때 외할아버지가 땅을 몰수당한 지주였다는 등의 이유로 대학에 못 간 학생이 적지 않았다.


1980년대 초 도입된 대입 예비시험에는 어느 계층이나 다 응시할 수 있어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진학 기회가 대폭 확대됐다. 그러나 출신성분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매년 1월 치러지는 대입 예비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 성적을 받은 학생은 대학별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으나 대학 선택은 여전히 수험생 부모의 성분과 인맥에 크게 좌우된다. 기본계층이 아닌 사람은 공부를 잘해도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업대학에 갈 수 없다. 부모의 배경이 갈수록 중요해져, 돈이 많거나 인맥이 좋은 사람들은 자녀를 입학시키기 쉽다. 그 해에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은 다음 해에는 응시할 수 없고, 3∼5년 동안 직장에 근무한 뒤에야 예비시험에 재응시할 수 있다.


대학마다 할당량이 있는데 여학생 비율은 얼마, 제대군인 비율은 얼마, 직장근무자 비율은 얼마 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제대군인 할당량을 높게 함으로써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을 5∼7년의 군 생활 동안 잊어버린 사람들도 쉽게 입학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는 미국 대학에 있는 차별 시정 내지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오랫동안 차별 당했던 흑인이나 소수계, 장애인이 특별대우를 받는 반면 북한은 당국에 충성한 사람들과 그 자손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15% 정도로 낮아서 입학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북한 대학생 출신 월남자들은 남한의 대학생활이 너무 가볍고 혼란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치와 출신성분을 강조하긴 하지만, 북한의 대학에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된 재능 있는 인재가 많고, 대학생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이공계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은 북한 대학 교육의 또 하나의 특성이다. 다른 공산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공업 발전을 위해 이공계를 더 높게 대우해 주다 보니 젊은이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이공계에 입학하려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제일 좋은 수험생들을 뽑을 수 있는 명문대학은 세계 수준의 기술자들을 교육시킨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정치상황 때문에 미사일이나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투입되고 있지만, 한반도의 상황이 바뀌면 그 과학기술자들이 우리의 생활을 더 재미있게, 더 편리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지 않을까.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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