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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적 재능은 일찍 꽃 필까?… 천재들도 전성기는 서로 다르다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자기만의 때가 있다

우즈·매킬로이·스피스 등
20대 초반에 최고 기량 과시
피지출신 싱, 40세 넘어 22승
美 워커는 37세 메이저 우승

한국 남녀 이원준·안송이도
데뷔 13년·10년만에 첫 우승
나이 들면 감정조절 능력 향상
심리적 성숙이 천재성 발휘케

어느덧 기해년 한 해가 저물고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개최된 수많은 골프대회 중 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타이거 우즈(미국)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조조챔피언십 우승이 될 것이다. PGA투어 최다승(82승)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오랜 슬럼프를 딛고 일어선 우즈의 인간 드라마가 적지 않은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이원준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안송이의 우승이 우즈의 우승 못지않게 인상 깊었다. 둘 다 늦깎이로 우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7년 아시아투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원준은 올해 K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정상과 인연이 없었다. 안송이 역시 2010년 프로 데뷔 후 10년 만에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거뒀다.

데뷔 첫해부터 2차례나 우승하며 총 82승이나 거둔 우즈 같은 이도 있지만, 투어에는 평생 우승 한번 못해보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골퍼가 더 많다. 똑같이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왜 누구는 이른 나이에 성공하고, 왜 누구는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재능을 꽃피우거나 끝내 꽃피우지 못한 채 사그라지는 것일까?

보통 일찍 성공하는 선수는 그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천재성과 나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시카고대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갤런슨에 따르면 결론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영미권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T S 엘리엇과 로버트 프로스트는 각각 23세와 48세에 최고의 작품을 남겼다. 파블로 피카소는 26세 때 ‘아비뇽의 처녀들’ 등 다수의 명작을 발표했으나, 인상파 거장 폴 세잔은 50대 중반 이후에 그린 그림들만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갤런슨은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천재로 평가받는 수백 명의 사례를 분석한 뒤, 천재는 일찍 두각을 나타낸다는 일반의 상식과 달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골프계에서도 우즈의 등장 이후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 미국의 조던 스피스처럼 어린 나이에 골프를 시작해서 20대 초반에 최고의 기량에 도달해 성공하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지만, 의외로 이원준이나 안송이처럼 뒤늦게 재능을 꽃피운 골퍼도 많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 출신의 비제이 싱은 유러피언 투어를 거쳐 30세에 PGA투어에 데뷔했다. 그는 총 34차례 우승했는데, 절반이 넘는 22번의 우승을 40세 이후에 차지했다. 싱은 2004년에는 41세의 나이로 우즈를 누르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의 케니 페리와 지미 워커 역시 대표적인 늦깎이 골퍼다. 30세에 첫 우승을 차지한 페리는 PGA투어 통산 14승 중 11승을 40세 이후에 거뒀다. 2005년 2부 투어 상금 1위 자격으로 당당히 PGA투어에 진출한 워커는 이후 8년 동안이나 우승이 없었다. 2013년 187경기 만에 첫 승을 거두더니 내리 5승을 보탰다. 37세이던 2016년에는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골프 인생에 정점을 찍었다.

이원준과 안송이도 이른 나이에 프로 테스트를 통과할 만큼 골프에 재능이 있었다. 연습 또한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했을 것이다. 실력은 충분했지만, 우승이 늦었을 뿐이다. 주니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원준은 공격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다. 이런 성향의 골퍼는 타고난 재능을 중시하며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길 땐 별문제가 없지만, 실패할 경우 심리적 타격이 크다. 패배는 곧 자신의 재능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배의 두려움에 도전을 회피하거나 지나친 불안과 긴장으로 경기를 망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안송이는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선두권으로 나설 때마다 몸이 덜덜 떨려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단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운동기능은 퇴보하지만 반대로 좋아지는 부분도 있다. 성격이 그렇다. 까칠하던 사람도 점차 여유 있고 원만해진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나이 들수록 공포와 불안에 반응하는 편도체의 활동이 약화되는 대신 감정 통제와 조절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의 기능은 향상된다. 한마디로 스트레스에 강해지고 감정 등의 자기조절 능력이 좋아진다.

이원준과 안송이의 뒤늦은 만개도 이런 심리적 성숙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어린 천재에 열광하는 세태가 이 같은 대기만성을 쉬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행히 이원준에게는 평생 든든히 곁을 지켜준 부모님이 있었고, 안송이 뒤에도 9년 동안 묵묵히 믿고 기다려준 가족과 후원사가 있었다.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10801032239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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