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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증권 결제시스템 재정비 급하다 / 홍정훈(경영)교수

통합거래소의 초대 이사장이 결정되면서 거래소 통합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정부가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거래소 통합을 진척시켜 온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국제경쟁력 강화라고 판단된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은 증권시장의 선진화 없이는 불가능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증권시장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거래소에 대한 구조 개편과 더불어 청산 및 결제제도 등 증시 하부구조를 효율화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최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금융 개방화.국제화 등으로 국제 간 거래소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세계적으로 거래소 간 합병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더불어 청산 및 예탁결제기구의 통합 등 증시 하부구조 개편도 추진되고 있다. 이는 증권거래 비용의 상당부분이 청산 및 예탁결제에서 발생되는 등 증권시장의 경쟁력에서 증권결제제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융거래가 증권을 매개로 이뤄지는 금융 증권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증권결제시스템은 금융시장에서 중앙은행의 지급결제시스템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증권결제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은 비용 절감, 이용자 편의성 제고 및 리스크 축소라는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리스크의 축소는 비용 절감과 이용자 편의성 제고와 같이 증권시장 참가자에게 당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효익은 아니나 증권결제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금융시장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면에서 제도 개선의 근간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증시 하부구조의 개선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거래소 통합 목적이 증시 경쟁력 강화를 통한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이라면 증권결제시스템의 정비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증권결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거래소 통합보다 증권시장의 경쟁력 강화에 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의 증권결제시스템은 초기 구축단계인 70년대 초반과 거의 다름없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증권시장 발전에 비해 제도적으로 낙후돼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증권시장의 발전에 걸맞은 결제 하부구조의 법적 정비가 이뤄지지 못함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증권결제에 관한 주체가 법적 및 실질적으로 명확하지 않아 기관 간 갈등이 빈번히 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국내외 시장 참가자에게 증권결제 리스크의 확산을 광범위하게 증폭시킬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이 문제가 한국 금융시장에서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증권의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증권결제시스템은 지급결제시스템과 함께 한 나라의 금융시장 동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증권결제시스템의 비효율적 설계는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제한하고 안정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증권결제시스템의 구축은 증권시장뿐 아니라 전반적인 금융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와 직결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러 해외 사례와 국제기구의 권고안에 의하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증권결제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결제 경로(channel)를 단축해야 하며 실질적인 결제제도의 운용과 권한이 결부된 시스템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제 통합 거래소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증권시장의 다음 과제는 국제적 정합성을 갖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증권결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거래소의 통합에서 본 바와 같이 이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관련 기관 간 이해 상충 문제 등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들은 우리나라의 금융 선진화를 위해 좀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제도 개선에 임해야 할 것이다.

홍정훈 국민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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