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올림픽 포스터 사라져 가는 신체들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후 120여 년이 지나면서 총 31회의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올림픽과 함께 탄생한 포스터는 근대 초기에 발전되기 시작한 컬러 인쇄술에 힘입어 근대 민족국가의 디자인 기량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고 현재도 여전히 개최국의 문화 역량을 보여 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역대 올림픽 포스터의 공통점은 선수의 역동적인 모습과 개최국의 특성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나 지형, 색채 등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당연한 역사적 궤적이기는 하지만-그 모델이 전부 강인한 남성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포스터 속의 그런 남성들의 신체도 어느 시기인가부터는 변화하였고 이제는 아예 그 신체들도 사라져 가는 듯하다. 


여성의 신체 : 시각 유희와 은유의 대상 

우선 올림픽 포스터에 드물게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잠깐 살펴보자. 1896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올림픽의 포스터 에서는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우승자를기다리고 있는 아테네 여신 혹은 여사제의 모습이 보인다. 올리브나무는 아테네여신이 준 지혜의 작물로 여겨졌으며 고대 올림픽의 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이 여성은 스포츠의 직접 참여자가 아니다. 

1900년 파리 올림픽 포스터 또한 흥미롭다. 이 해에는 종목별 포스터가 그려졌는데, 여성 펜싱 종목이 없었음에도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가슴이 부각된 까만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모델로 등장했다. 또 다른 포스터에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왕관을쓰고 망토를 휘감은 여성도 등장한다. 신체의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에서도 이렇게여성은 성적으로 강조된 관음적 대상으로 등장하거나 승리의 광휘를 위한 상징적인 표상으로 그려졌다. 그 후에 여성은 포스터에 거의 보이지 않다가 한 세기가 지난 즈음에 여성 디자이너를 통해서야 잠시 등장한다. 


1900년 파리 올림픽 포스터
허리가 잘록하고 가슴이 부각된 까만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모델로 등장한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포스터에는 강인한 여성의 두 발이 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달리는 모습이 디자인되었다. 에이프릴 그레이먼이 디자인한 이 포스터는 최초의컴퓨터 그래픽 기법으로 스포츠의 본질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는 격찬을 받았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포스터
여성이 두 발로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표현한 이 포스터는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기법으로 스포츠의 본질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는 격찬을 받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2가지 아트 포스터가 제작되었는데, 이때 달리는여성을 캐리커처 스타일로 표현한 포스터가 한 점 등장했다. 이렇게 올림픽 포스터에서 여성의 신체 전부가 스포츠인답게 역동적으로 부각된 작품은 나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영영 보지 못할 듯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포스터
오륜기의 추상적인 도형으로만 디자인된 아트 포스터는 기자들의 비판을 받으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남성의 신체 :구체적인 강인함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1908년 런던, 1912년 스톡홀름, 1920년안트베르펜, 1924년 파리, 1928년 암스테르담, 1932년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하여 근대 올림픽 포스터에는 강인한 근육과 힘찬 동작을 자랑하는 산업시대의 남성의 몸이 등장한다. 육체의 힘으로 거대한 기계를 돌리고 도시를 건설하기에 이상적인 남성들의 신체가 표현되었다고 볼수 있다. 

한 예로 1936년 나치 정권이 개최한 베를린 올림픽 포스터 속 남성은 월계관을 쓰고 눈이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잘 다듬어진 근육과 조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석조 건물을 배경으로 사두마차를 몰면서 힘차게 전진하는 선수의 모습을 통해 아리안계의 백인 남성은 고대 올림픽의 영광을 복원하는 위대한 후계자로 호명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포스터
나치 정권이 개최한 베를린 올림픽 포스터 속 남성은 월계관을 쓰고 눈이 하늘을 향하며, 잘 다듬어진 근육과 조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1952년 헬싱키, 1960년 로마 올림픽 포스터에도 여전히 장대한 기운의 남성 스포츠인이 등장한다.이러한 모습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의 포스터에서 변화를 맞게 된다. 그해의 포스터는 기존의 회화적 전통을 깨고 과감하게 사진을 사용하였다. 까만 침묵의 바탕을 배경으로 다양한 피부 색깔의 선수들이 달리기 스타트 라인에 선 모습을 통해 작가가 그려 내고자 한 것은 머리끝까지 긴장된 선수들의 내면 세계였고 정지된 호흡이었다. 가메쿠라 유사쿠가 디자인한 이 포스터는 올림픽 포스터 사상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이 포스터를 기점으로 이후에는 선수들의 표정이나 자세가 클로즈업 된 사진이 종종 사용되었다. 이 포스터는 2020 도쿄 올림픽 홍보 오마주 작품으로 현재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 이런 선수들의모습은 포스터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1964년 도쿄 올림픽 포스터
기존의 회화적 전통을 깨고 과감하게 사진을 사용해 선수들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포스터로, 올림픽 포스터 사상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다. 

조영제가 디자인한 19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에는 퍼져 나가는 오륜의 빛 속에서 성화를 들고 달리는 선수가 작게 그려졌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포스터 속에서는 인간이 추상화된 역동적인 기운으로만표현된다. 결국 2012 런던 올림픽 포스터는 오륜기의 추상적인 도형으로만 디자인되어 기자들의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포스터 속의 신체 역시 운동의 궤적과 기운을 보여 주는 도구로 사용된 것처럼 조형적으로 다듬어져 있다. 이러한 올림픽 포스터의 변화는 남성들의 몸 역시 관음과 꾸밈의 대상이 되어가기 시작한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와 거의 일치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포스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포스터
          퍼져 나가는 오륜의 빛 속에서 성화를         선수들의 모습이 포스터에서 사라졌고, 인간을 
               들고 달리는 선수가 작게 그려졌다.            추상화된 역동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e-스포츠 속의 신체 
어쩌면 올림픽 포스터에서 인간의 강인한 신체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인간의 노동을 대치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시대, 우리의 몸은 여성이나 남성 모두 가꾸어 내야 할 미적 대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런 신체를 지닌 젊은이들은 움직이는 스포츠 대신 e-스포츠에 열광한다. 하지만 거대한 e-스포츠 아레나에는 게이머들의 두뇌와 두 손, 그리고 관중의 시각만이 존재한다. 루스 이리가라이가 이야기했듯이 시각이 지배하는 순간 몸은 자신의 물질성을 상실한다. 게임을하는 사람의 신체는 오로지 뇌와 시각의 전달체로서만 작용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뛰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e-스포츠는 정보 매체의 특성상 전파 매체를 통해 정보가 공유된다. 그리고 그들의 홍보 매체 속에서는 스포츠라고 불리되 신체는 사라지고, 게이머들의 거대한 초상이나 초자연적인 아바타들의 신체와 그들의 경주와 승리만이 부각되어 보일 것이다.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 작년에 <감각과 일상의 한국 디자인문화사>를 출간했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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