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문학신간]북파공작원 운명 담은 시집낸 신대철시인 /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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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5-02-23 23:14]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잠입해 들어갔던 북파 공작원들의 비운을 담은 시집이 처음으로 나왔다. 국민대 국문학과 신대철 교수(59·사진)는 최근 창비에서 펴낸 시집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에서 과거 공작원들이 ‘작전’을 위해 북한으로 잠입하는 ‘안전소로(安全小路)’를 안내했던 기억들을 되살렸다. 그는 1960년대 말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서 북파 공작원들을 지원하는 장교로 복무했다. 대부분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었던 공작원들을 캄캄한 밤 풀숲에서 마지막으로 배웅하곤 했다. 생사가 엇갈리는 이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그려놓은 작품은 ‘마지막 그분’이다. ‘그분은(중략)/깜깜한 어둠 속을 한동안 응시하다/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함께 가자 위협하지도 않고/뒤돌아보지도 않았다//작전에 돌입하기 직전/손마디를 하나하나 맞추며/수고스럽지만 하다가/다시 만나겠지요 하던 그분/숨소리 짜릿짜릿하던 그 순간에/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을까/그게 그분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데/나는 왜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까’(‘마지막 그분’ 일부) 모든 공작원이 입북을 강행하는 게 아니다. 중도에 되돌아와 미지(未知)의 운명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공작원들도 있었다. ‘작전 포기하고 밤새 분계선을 넘어와 다시 분계선 앞에 웅크리고 있는 그대 (중략) 줄담배 연기 속에 눈만 내놓고 딸딸이를 구석으로 밀었다 앞으로 당겼다 (중략) 통문 지나 먼지 속에 지프차 한대 들어온다/캄캄해진다, 후르르륵/등줄기에 불이 붙는다’(‘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일부) 신 시인은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1977년)를 펴낸 후 23년 동안 침묵하다 두 번째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2000년)를 펴냈다. 그는 이번 시집의 권말 ‘시인의 말’에서 그간의 세월에 대해 “(GP생활에 대한 악몽들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시를 버렸다”고 쓰고 있다. 그러다가 그는 2001년 실미도를 찾았다가 떠오른 북파 공작원의 기억을 담은 시 ‘실미도’를 쓰면서 비로소 그 힘든 기억을 향해 ‘말문’을 텄다. 문학평론가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는 “(‘마지막 그분’ 같은) 기막힌 작별 속에 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자신의 몫으로 고스란히 떠맡았다”며 “그(신대철)가 긴 탈주의 끝에 악몽의 기억을 혼신의 힘으로 대면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신 시인은 한때 몽골을 방문한 적도 있다. 그곳 북한대사관을 지나면서도 불현듯 북파 공작원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 경험했다. ‘그때 천둥 번개 내리칠 때 앞선 발자국에 한발씩 포개어 사선 넘으면서 되돌아올 수 없는 길 뒤돌아보다 지뢰 밟고 하나씩 사라지고’(‘몽골 북한대사관 앞을 지나’ 일부)라는 기억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에서 ‘강에 떠내려 온 신원 미상의 그대/남이든 북이든 묻힐 데 없어/우리 가슴 속에 떠돌아다니는 그대/고이 잠들어라’며 기막힌 작별 끝에 돌아오지 못했던 분단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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