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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옥 칼럼] 햇볕정책과 동방정책 / 유영옥(정치대학원) 특임교수

현 정부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은 ‘국민의 정부’, ‘햇볕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주지하듯이 햇볕정책은 독일통일의 토대가 되었던 소위 ‘동방정책’을 벤치마킹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런 맥락에서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의 동방정책과 우리의 햇볕정책의 정책 방향과 정책환경의 상이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동방정책의 정책 방향은 동독주민들의 인권과 삶의 질 개선에 우선으로 초점을 두었다. 당시에 동서독 관계를 보면 동독주민의 85%가 서독TV를 시청하고 동서독 주민들이 양국 정부의 승인 아래 서로 방문할 수 있었다. 
 
햇볕정책의 주창자였던 고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도도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여 8천만 전 민족이 핵 인질이 되어 있는 작금의 상황과 너무도 대비되는 당시의 현실인식이었다. 햇볕정책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의 성과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오판한 결과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현 정부도 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과의 문제라고 하면서 평화맹신의 브레이크 없는 전차를 몰아가고 있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현실성과 유연성을 상실한 채 북한의 비정상적인 태도와 관계없이 나 홀로 평화지도 그리기에 골몰하는 형국이다. 서독의 동방정책이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써 독일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정치의 규칙을 준수할 줄 아는 동독체제와 민족애적인 동독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역으로 비정상국가인 북한정권을 상대하는 우리의 대북정책이 고도의 합리성과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코 실효적인 정책이 될 수 없을 것임을 시사해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 정부는 문 대통령의 임기 내에 남북관계의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당국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무장 완성’과 ‘자력갱생’이라는 핵 불포기 노선을 천명했다. 이러한 차제에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북한 개별관광의 추진을 언급했다. 이는 우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의 틀을 약화시킬 수 있고 이어, 얼마 전까지 미 재무부를 통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가한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으로 한ㆍ미 공조의 균열을 일으킬 수 있으며 끝으로, 북한이 핵 불포기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경협사업은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정책성향이다. 

서독의 동독 접근정책이 성공한 것은 대미관계를 긴밀히 하고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한 서방진영의 통합이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동독 주민들의 인권과 삶의 질을 개선할 때 먼저 민족통일이 가능하고 종국적으로 국가통일도 가능하다는 차원 높은 통일정책이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대북정책, 즉 햇볕정책은 햇살이 그 지향점에 제대로 안착하는지에 대한 검증작업을 등한시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남북관계에서의 축적된 경험은 그것이 설사 시행착오라 할지라도 올바른 교훈으로 삼는다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북정책의 일관성 있는 철학과 원칙 없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여 북한주민의 인권에 침묵하면서 관계개선을 구걸하는 행태로는 진정한 남북관계의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독일통일의 원동력이 된 동방정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한ㆍ미 동맹관계와 한ㆍ미ㆍ일 공조체제를 우선으로 확고히 한 토대 위에서만 원활한 대북 및 대중ㆍ러 관계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도발적으로 핵무기 고수를 천명하고 나온 이 엄중한 시점에서 동방정책의 교훈은 우리에게 더욱더 커다란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 


원문보기: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9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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