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흔들리는 푸틴의 ‘빅 픽쳐’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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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쇼 이좃트 파 플라누(Все идет по плану).” 영국 유학시절 사회과학도를 위한 러시아어 수업에서 배웠던 문장이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인상적인 문장이었나 보다.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고 하니 지극히 소비에트적 마인드에서 나온 말이다. 고스플란(국가계획위원회)을 통해 소련 내 모든 경제활동을 기획, 조정, 통제했던 소련 시절에는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진행되어야만 했고, 또 그렇다고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계획 경제는 포기되었고 고스플란도 해체되었다. 그러나 계획에 따른 일의 진행을 선호하는 러시아인의 마인드는 여전한 것 같다. 문제는, 인생사가 늘 그렇듯이, 계획에 따라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지금의 푸틴 대통령이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 같다. 늘 단호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던 푸틴 대통령이지만 최근에는 몹시 피곤하고 심지어 우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푸틴 대통령의 계획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됐지만, 계획에 없던 한 가지,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났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러시아 정부는 선제적으로 강력한 대응을 했다. 러시아인 감염자가 나오기도 전에 국경 통제와 외국인 격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러시아 내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러시아 누적 확진자 수가 1,000명 이하였던 3월에만 해도 코로나 사태가 정부 통제하에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3월 27일 그 수가 1,000명을 넘어섰고 불과 두 주 후인 4월 9일에는 1만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후 확진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5월 초에는 하루 확진자만도 1만 명을 넘어섰다. 결국 5월 28일 현재 러시아의 총 누적확진자 수는 37만9,000명에 달해 세계 3위를 기록한다. 인구 대비로 환산하면 러시아의 사정이 스페인, 미국,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지만 코로나 확산에 대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는 러시아가 이들 국가들과 다를 바가 없다. 코로나 사태는 푸틴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무엇보다도 국민투표를 연기함으로써 개헌 작업을 계획대로 빠르게 마무리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국민투표는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진 후 다시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개헌 작업 전체가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투표 실시가 늦어질수록, 논란이 많은 개헌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더 커진다. 2014년 크림 병합 이후 한때 80%에 달하던 푸틴의 지지도는 2020년 4월 40%대까지 하락했다. 정부의 영향을 덜 받는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 1월 72%에 달했던 지지도가 4월에는 47%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에 지지 반대 의사 표명자의 비중은 13%에서 31%로 급증했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 사태는 푸틴 체제 하의 관료적 무능력과 비효율성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러시아 정부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3월 28일부터 4월 30일까지 6주간 유급 휴무 조치를 취했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코로나 감염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에게 특별수당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의료진의 불만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의 코로나19 대응방식에 항의하던 세 명의 의사가 의문의 추락 사고를 당했으니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결국 러시아 정부가 코로나 확산을 통제할 수 없고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은 푸틴의 리더십이 위기 시에 국민을 보호하고 이끌 만큼 충분히 강력하거나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국민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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