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게임법칙’ 너머의 민주주의 / 김환석(사회)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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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5-09-20 18:18] 6자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국내 정치는 아직 혼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추석 민심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대연정과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지역구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외침에 공감하는 국민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국민 스스로가 알아채지 못하는 중병을 대통령이 나서서 고치지 않으면 누가 고치느냐는 일종의 사명감에 사로잡혀 종래의 행보를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여당과 야당은 이러한 대통령의 행보를 둘러싸고 찬반의 싸움을 계속 벌일 것이고, 한국 정치는 지금의 지리멸렬한 상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의구심처럼 대통령과 여·야의 이 모든 행태가 결국 표 계산을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 나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 내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점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깊어가는 실망이 혹시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국민의 피땀으로 수십 년의 권위주의 정권을 물리치고 연이어 민주정부를 탄생시켰으며, 작년에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탄핵에서 대통령을 구해내기까지 했건만, 바로 그 대통령이 아직 권위주의 뿌리를 청산 못한 세력에게 ‘대연정’이란 이름으로 권력을 통째로 갖다 바치려는 모습을 보이니 국민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김대중·노무현 양대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점점 심화되어온 계층 양극화와 환경 파괴는 “민주주의를 해보아도 별볼일 없다”는 좌절감만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지역구도 극복과 합의의 문화 구축에 찬성한다. 그러나 이것이 대연정이나 선거구제 개편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국민 의사와 무관한 정치권 내의 게임규칙 수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자체의 한계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들이 선출되지만, 투표 후에는 이 대표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따라서 정치인들에겐 국민의 진정한 이익이나 의사보다는 투표에 이기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고, 여기에 지역구도 극복과 합의의 문화가 정착할 자리는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대규모 사회에서 사는 한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를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로 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숙의민주주의란 핵심적인 정책결정에 대하여 일반 국민들이 학습과 상호토론을 기초로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이다. 1990년대 이후 민주주의이론은 숙의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합의회의, 공론조사, 시민배심원, 온라인 시민포럼 등 다양한 숙의민주주의 제도들이 실험되고 확산되어 왔다. 숙의민주주의 제도는 여론조사나 인터넷 댓글 등 숙의에 기초하지 않은 피상적 국민여론의 위험성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국민 의사의 확인과 더불어 공익을 위한 합의가 촉진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를 통해 정치권과 국민 사이의 괴리가 감소되면 시들어가는 민주주의의 재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며, 정치는 다시 한국사회의 비전을 다듬는 흥미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현재 정부는 공공기관 갈등관리법안 속에 ‘참여적 의사결정’이란 항목으로 숙의제 도입을 일부 고려하고 있으나, 이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숙의민주주의는 단지 갈등관리를 위한 기법이 아니라 민주정치의 본질과 틀 자체를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환석/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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