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위기의 동지들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석권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한국 영화에 축하를 보내며 한국 건축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와 건축은 동지였다. 기억이 시작된 때부터 열정과 관심과 노력을 쏟았지만 한 번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줄곧 위기임을 푸념하던 ‘위기의 동지’였다. 오죽하면 극장에 뱀을 풀어야 했던 영화가 아니던가. 오랫동안 함께 분투하던 동지의 성공에 감회가 남다르다.

시간을 단위로 하는 영화와 공간을 재료로 하는 건축은 극단에 있는 예술 형식으로 보이지만 비슷한 점이 더 많다. 그 때문인지 많은 영화감독의 어릴 적 꿈이 건축가였음을, 건축가들의 꿈이 영화였음을 고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영화감독이 건축을 수업했고 영화를 하다가 건축가로 성공하기도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건축은 영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하나의 영화, 하나의 건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수백 명은 필요하다. 그들의 솜씨나 수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 수백 명은 보수로 움직이지만, 각자가 독립된 창작자이기도 하다. 이들을 설득해서 원하는 결과로 유도하는 것 또한 감독과 건축가의 역량이다. 개인의 창작인 동시에 한 사회, 한 시스템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다 보니 아카데미상의 의미가 더욱 커 보인다.

건축은 어떻게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어떻게 영화처럼 세계적인 건축가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영화 성장에 지속적인 투자가 큰 몫을 했다지만 한국 건축에 투자가 적은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해 1000건 이상의 건축설계 공모가 열린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며 모든 건축가에게 참가 자격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실제 운용에서는 참신한 건축가나 창의적인 설계안을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장 큰 건축주, 즉 영화로 치면 투자가라고 할 수 있는 정부, 공공기관이 있다. 이들은 설계 공모를 정부 조달, 공개 입찰의 과정으로 본다. 잡음이 일지 않는 투명한 과정이 최대의 관심이다. 응모하는 건축가들도 새로운 시도보다는 책 잡히지 않을 ‘안전한’ 설계안을 제출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설계 공모가 가진 진보적인 미덕은 옅어지고 그저 그렇고 그런 정도의 무난한 건축들이 당선되고 지어진다.

다른 하나는 비평의 문제다. 영화 관련 잡지에 실리는 글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혹독하다. 지적은 적확하고 논리는 풍부해서 일반인에게도 훌륭한 독서가 될 정도다. 수십 개의 유튜브 채널이 영화를 소개하며 비평한다. 한국 영화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린 배경에는 두툼한 비평의 인프라가 있었다. 이에 반해 건축의 평론 공간은 위축되었다. 10여종에 달하던 건축 관련 잡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건축 관련 기사가 늘기도 했지만, 여전히 좋은 집 소개나 광고 수준이다. 평론가라 부를 만한 필자도 많지 않고, 비평도 주례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인 커뮤니티에서 서로 상처를 주기보다는 끌어안고 ‘세상에 나쁜 건물은 없다’며 격려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20세기 미국의 건축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연을 날게 하는 것은 순풍이 아니라 맞바람’이라고 했다. 혹독한 비평의 맞바람이 건축을 날게 한다.

마지막으로는 관객의 관심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오스카 수상소감이 귓전에 남아 있다. “특별히 한국의 관객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의 지원과 직설적인 의견 개진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부동산이 아닌 문화로, 예술 형식으로 건축을 대하는 일반의 성원과 따끔한 질책이 한국 건축에도 오스카를 안겨줄 수 있다.

참! 위기의 단골에는 한국 축구도 있었다. 그 성장에는 충혈된 눈으로 밤새 유럽 축구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팬들이 있었다. 덕분에 지도자를 수출하고 대회마다 성과를 낸다. 위기의 담장을 훌쩍 넘어 세계로 달려가는 옛 동지들의 뒷모습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허전하다. 축하해 동지들.


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23546&code=11171426&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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