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 북한의 대집단체조와 성형수술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스포츠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 ‘Deporatare’로,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분을 전환하고 신나게 논다는 의미이다. 중세 때는 농민이나 기술자들이 심한 노동에서 벗어나 헤엄치고 공을 차면서, 자유를 잠시 누리던 행위로 여겨졌다고 한다. 현대의 정의를 보면 스포츠는 전략적인 판단을 기초로 몸을 움직이는 게임이나 오락을 하는 행위로서, 참가자와 관람자의 유희, 개인의 건강증진, 단체 활동을 통한 사회적 증진과 협동을 지향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경쟁과 승리의 요소가 가미되면서, 스포츠는 거대한 산업 혹은 축제이기도 하고, 승리를 향한 무기 없는 전쟁이라는 함의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가 지닌 이런 긍정적인 면은 그야말로 하나도 없이, 수많은 신체의 기계 같은 동작으로만 이루어지는 장대한 구경거리가 있다. 북한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이 그것이다. 

능라도의 스펙터클

북한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에서 개최되고 있는 공연으로, 해방 이듬해인 1946년 5월에 진행된 <소년들의 연합체조>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84개의 작품이 창작되었으며, 특히 2002년 김일성 생일 90회를 맞이하여 창작된 <아리랑>에 대해서 북한은 ‘새로운 체육예술의 세계를 보여주는 21세기의 대 걸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좌석은 3등석이 13만 원, VIP석이 103만 원으로, 해외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2019년부터는 김정은이 호통을 쳐가며 고치라고 한 <인민의 나라>라는 새로운 공연이 시작되었다. 카드섹션을 실시하는 배경대에는 평양 중·고등학생 5만 명이 동원되는데 이들은 약 2분 간격으로 새로운 그림과 구호를 만들어 내야 한다. 카드 섹션의 도구는 여러 색으로 만들어진 1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마분지 책으로, 연습 기간 6개월 동안 매일 그 책을 들고 학교와 집을 오간다고 한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그림과 구호를 배경으로 그라운드에서는 집단 체조, 서커스, 태권도, 행진, 군무 등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거대하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위해서 물도 공급되지 않고, 화장실 가는 것도 저지되며, 혹독한 훈련과정이 따른다고 한다. 2018년도 문재인 대통령 방북기념 공연에서는 “헤어져서 얼마나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등의 문구와 함께 당에 대한 충성을 요하는 구호, 소나무, 무궁화, 학 등 조선시대 기호 등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현재 인터넷에는 이 당시의 공연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소녀들의 대규모 집단 링 체조를 보고 있자니, 문득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88년 9월 태권도 시범, 무용단들의 화려한 군무가 끝난 텅 빈 너른 운동장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운동장 한 끝에서 흰옷을 입은 소년이 등장해 굴렁쇠를 굴리며 푸른 잔디밭의 움직이는 한점이 되어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다가왔고, 메인 관중석 앞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감탄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기획한 이 공연은 전 세계의 격찬을 받았다. 그는 이 장면을 생명의 탄생을 표현하고 싶었던 자신의 철학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의 30개의 굴렁쇠로 만들어진 불기둥은 ‘30년 만의 올림픽’을 뜻하며 이 장면을 향한 오마주였다고 한다. 


북한 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공연

시선의 찬탄과 권력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때 선보인 한 어린아이의 움직임과 현재 북한의 기획되고 조직된 동작을 반복하는 대규모 청소년들에게는 똑같이 탄성의 시선이 집중된다. 하지만 굴렁쇠 소년이 생명을 표현했다면, 북한 아이들의 동작 속에서는 통치자의 위대함만이 끊임없이 찬양된다. 이렇게 통치자와 국가의 영광을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견디어 내는 그 과정을 통해서 북한 아이들에게는 신체를 통한 세뇌가 이루어진다. 관객석에서는 예술적 장치가 주는 시각적 매혹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그야말로 스펙터클을 통한 세뇌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북한의 매스게임은 남미의 가이아나에까지 수출되기도 했다. 나치의 통치술을 경험한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전체주의 국가는 정치를 예술화한다고 단언했다. 이런 단언을 증명하듯이 대한민국에서도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84회 생일을 맞아 대규모 집단 체조와 카드 섹션이 펼쳐졌다. 또한 1970년대 전국체전
에서는 매해 ‘수출 100억 달러 달성’ 등의 구호,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얼굴이 펼쳐지는 가운데 여고생들은 수영복을 입고 파도 만들기를 비롯한 다양한 체조를 해야 했다. 뙤약볕에서 연습하다가 졸도하는 학생들도 나오고, 참가를 거부하다가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1986년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의 얼굴이 카드 섹션으로 그려졌다. 1980년대 말 삼성체전 때는 이건희 회장의 얼굴이 그려지기도 했고, 2007년에는 삼성의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의 몸으로 만드는 카드섹션 장면이 인터넷에 떠다니다가 북한의 매스게임과 다를 바가 무어냐는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고는 부랴부랴 지운 일도 있었다. 제왕적 권력과 발상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타나는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권력이 가시적이거나 물리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대집단체조의 원리는 간단하다. 시각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위해 신체를 강제로 복종시키고, 그것을 이용하여 기획자는
돈을 벌고, 권력을 공고히 해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집 단체조의 미학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성형수술의 미학과도 유사한 듯하다. 명령 주체와 수행 주체가 동일하다는 점만 제외하고. 성형 또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굶거나 강제적인 방법으로 신체를 복종시키고, 턱뼈를 깎아 내다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 전체가 망막의 아름다움에 탐욕스럽게 집착하고 있기에 이 과정을 거부하는 젊은 여성에게는, 마치 집단체조 과정에 불참하면 가혹한 징계를 받듯이, 보이지 않는 징계와 불평등이 따라온다. 하지만 스포츠의 어원이 보여주듯이 우리 모두는 노동과 일상의 보이지 않는 통제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여가를 원한다. 2020년 올해는 눈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위해 신체를 혹사시키는 그런 풍조가 사라지고 스포츠의 어원이 되살아나고, 푸릇한 생명의 탄생을 느끼는 그런 신체 훈련, 본래적인 스포츠가 확장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평양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열리고 있다.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에 관심이 많다. 2018년 <감각과 일상의 한국 디자인문화사>를 출간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

이전글 [뉴스브리핑] 21세기 동북아硏 한일관계 토론회 / 이원덕(국제학부)교수 강연
다음글 [윤동호의 눈]고소·고발사건 선별입건법제 필요하다 / 윤동호(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