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아침을 열며] 그들이 꿈꾸는 정치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가로등에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알리는 현수기를 게시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얼른 나이가 들기를 바랐습니다. 온통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던 젊은 날, 나이든 이들의 안정감, 현명함 또는 확신 같은 것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이 들어 보니 저절로 현명해진다는 건 헛된 기대였습니다. 도리어 점점 더 모르게 되는 일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가 그렇습니다. 젊은 날에는 선과 악으로 또렷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던 우리 정치구도는, 진보와 보수처럼 설명되기도 하지만 제겐 아주 모호해 보입니다. 계속되는 이합집산이나 ‘통합’, ‘미래’, 혹은 ‘국민’과 같은 무미한 당명은 그 모호함의 징후입니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을 읽어 보고 판단하면 된다는 조언도 있지만 지난 총선이나 대선의 공약집을 다시 찾아보면, 매몰차게 떠나버린 연인이 전에 보냈던 연애편지를 읽는 것처럼 허탈해집니다. 그래도 달콤한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겠지요?

요즘 자신들의 정책과 정체성을 당의 이름으로 앞에 내세운 작은 정당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본소득당, 규제개혁당, 시대전환과 같은 당들입니다.

기본소득당은 말 그대로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의 실현을 정당의 핵심 목표로 삼은 정당입니다. 진보신당 등의 진보진영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기본소득 이외의 의제들은 대체로 기존 진보진영과 유사합니다.

규제개혁당은 그동안 규제로 고통받아온 혁신창업가들과 법조인, 기업인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정당입니다. 모든 정권이 규제 개혁을 내걸었지만, 기업이 느끼는 규제 부담은 여전합니다. 기술과 사업 모델의 혁신이 세계의 대전환을 일으키는 가운데 우리 혁신가들이 규제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스스로 정치를 하겠다는 소식은 신선했지만, 초보자들이 실제로 정당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창당 과정은 지금 순항중입니다. 규제 개혁이라는 기업친화적인 의제가 맨 앞에 있지만, 규제 개혁과 함께 복지의 확충을 강조하고 있고 기본소득에도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규제개혁당을 진보나 보수의 틀로 묶기는 어렵습니다.

시대전환은 정치인들이 모인 정당보다 의제를 개발하고 정치에 반영하는 플랫폼이 되겠다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사례에 영향받은 듯합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틀에 익숙한 정치인들의 시대를 이제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세대 측면에서도 30~40대가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개발된 정책을 살펴보아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듭니다. 규제 개혁에 있어서는 규제개혁당의 의견과 거의 같고,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우호적입니다. 정부 개혁에 대해 상당히 혁신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물론 이들 정당은 이른바 듣보잡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고, 심지어 허경영씨가 이끄는 ‘국가혁명배당금당’보다 인지도도 낮습니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정당 지지율 조사에 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방방곡곡 플래카드를 거는 기존 정당을 따라 할 돈도 없습니다. 많은 신생 정당이 그래왔듯, 총선에 맞추어 문 열었다가 선거 끝나면 곧 문을 닫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정강정책을 읽으면서 저는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기성 정당들을 욕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마치 객관식 보기를 고르듯 선택하는 방법만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라도 우리가 원한다면 큰소리로 말하고, 요구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나설 수도 있고 말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권리가 객관식이 아니고 주관식이라는 것을 이 겁 없는 소수 정당들이 새삼 일깨워 줍니다. 기성 정당들도 좀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원문보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2211368760999?did=NA&dtype=&dtypecode=&prnew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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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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