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학생선발 글로벌 스탠더드로 / 김동훈(법)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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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5-05-08 20:15] 〈김동훈/국민대 교수·법학〉 서울대가 2008학년도 대학입학부터 논술형 본고사 위주로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유수한 사립대학들도 이를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반면에 교육부는 본고사 불가라는 대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며 대립하고 있다. 이제 겨우 시작된, 내신 위주의 선발로 중등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교육부의 대학입학 개선안의 핵심 구상도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발시험은 사교육 확대 의미- 서울대의 안을 일종의 자구책이라며 옹호하는 견해도 있다. 어차피 수능 등급제가 실시되고 고교간 학력격차가 반영되지 않은 내신반영체제에서는 지원자들간의 변별력이 없으므로 대학이 별도의 평가자료를 얻기 위하여 시험을 부과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 언론의 사설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정말로 교육부는 이쯤에서 대학 입시에서 손을 완전히 떼야 한다. 세계적 명문 대학 중에서 대학이 뽑고 싶은 학생을 대학이 원하는 방식으로 선발하지 못하는 대학이 한 군데라도 있다면 그 이름을 대보라.”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세계적 명문대학 중에서 지원자들에게 동일한 시험을 부과하여 그 성적순으로 뽑는 대학이 단 한군데라도 있는가.” 서울대측은 논술형 시험이 단순한 지식 위주의 지필고사가 아니라 창의력 등을 테스트하는 통합교과적인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시험의 방식이나 내용이 아니라 선발을 위해 대학이 지원자에게 시험을 부과한다는 그 사실이다. 시험의 부과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입시상품을 만들어낼 것이고 이것은 사교육 시장의 확대를 의미할 뿐이다. 선발시험의 부과는 대학이 중등교육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중등교육 및 지원자와 학부모들에게 일종의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권위주의의 표현이다. 시험은 그 성격상 응시생들을 시험대비라는 공포와 압박감에 시달리게 하고 획일화된 기준을 강요하는 일종의 폭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만일 미국의 하버드대학이 필기시험을 쳐서 그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다면 미국 전역은 하버드 준비반 학원으로 넘칠 것이다. 우리는 이들이 왜 손쉽고 권위도 행사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고, 전문가인 입학사정관들이 수많은 지원자들의 두툼한 서류를 1년 내내 읽고 토론하고 고민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얼마전 외국의 명문대학에 합격한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인터뷰 중에 말하는 내용을 텔레비전에서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이 대학들은 나라는 사람을 완전한 사람으로서 봐 주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좀더 미국 대학에 대한 선택을 확신하게 됐어요”라는 대목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펼치고 싶은 꿈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점수 기계로만 보는 국내 대학에 자신의 귀한 인생 시절 4년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뜻이리라. -본고사 실시땐 모두 공멸의 길- 글로벌 체제하에서 우리의 고등학교 졸업생들 중 해외의 유명대학으로 직행하고 있는 학생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국내 대학들은 앉은 자리에서 이류대학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대학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선 학생선발의 철학과 방식부터 글로벌 스탠더드에 접근해야 한다. 그 핵심은 지원자 개개인의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일이다. 이제 진정한 교육적 선발의 방식을 놓고 고민하며 경쟁해야 한다. 선발과정에서부터 학생들에게 세심하게 교육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대학이 선발 이후에 책임의식을 갖고 교육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 대학들은 한편으로는 교육적 선발을 통해 사회의 신뢰를 쌓아가면서 대학들에 더 넓은 선발의 재량권을 달라고 사회를 설득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 대학들이 저마다 대학별 본고사를 실시하면서 어깨에 힘이나 주려고 한다면 그것은 공멸하는 길이다. 이미 대학교육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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