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대북 전력지원의 녹색성찰 / 김환석(사회)교수

[한겨레 2005-07-18 18:33]


끔찍한 전쟁의 가능성을 연상시키면서 우리 국민을 만성적 공포에 시달리게 했던 북핵 문제가 6자회담의 재개로 겨우 한시름을 놓게 된 듯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북한에 제안한 대북 직접 송전이 과연 북핵 문제를 풀고 남북관계를 평화적 기반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묘안인가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언론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대북 전력지원 제안을 단지 국제정치나 남북의 경제협력 차원에서가 아니라 한반도의 환경친화적 발전 차원에서 검토하고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즉 이번의 정부 제안은 대형 핵발전과 화력발전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공급위주 전력시스템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은 에너지 효율화와 전력소비 줄이기 등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전환을 통해 마련한 잉여전력을 북한과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대북 전력지원에서 핵심적인 관건은 200만ⓕ의 전기를 북한에 보낼 대규모 송전선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인데, 이에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도 문제지만 생태계 파괴와 전자파 위험 등 그동안 남한 사회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고스란히 북한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근본적인 대안으로서 대형 송전망 건설 대신에 천연가스를 이용한 열병합 발전시스템 구축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을 남한 정부가 북한에 지원해야 한다고 일부 환경단체는 제시하기도 한다.

환경단체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정부나 주류 언론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 겨우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마당에 이 무슨 한가한 얘기냐’며 기껏해야 소수 이상주의자의 몽상이나 시비걸기쯤으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남한에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몇 개 더 지어서라도 북한과의 평화체제만 구축될 수 있다면 그로 인한 환경파괴와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마도 지배적일 것이다. 환경문제로 인해 존폐의 위기에 처했던 핵발전과 화력발전이 이렇게 북핵문제 해결의 주역으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는 셈이다. 마치 위기에 처했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권 붕괴와 세계화로 화려하게 부활했듯이….

과연 전력공급을 통해 남북한 사이에 평화가 촉진된다면 그 전력의 공급원이 어떤 환경적 위험을 안고 있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다른 말로 하자면 북핵 위기만 벗어날 수 있다면 환경 위기는 한반도에서 무시해도 될 하찮은 문제일까? 나는 나와 후손을 위해 핵전쟁의 공포도 원하지 않지만 환경재앙의 공포도 결코 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를 지금부터 구상하고 조금씩 실현해나가야 한다면, 핵전쟁과 환경재앙 모두를 근본적으로 피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을 이번 전력공급 문제에서부터 과감하게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북핵 위기와 환경 위기의 핵심에는 현대 과학기술의 위험성 문제가 공통적으로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부와 언론은 그동안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생각해 그 긍정적 측면만 일방적으로 부각시켜 왔을 뿐, 현대 과학기술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성찰도 보이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왔다. 이런 편향적 태도는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를 열어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 6월4일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선언한 ‘국가 지속가능 발전 비전’이 진정성이 결여된 겉치레만은 아니리라고 믿고 싶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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