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 환기를 부탁해요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교육부가 초·중·고교 등교 수업을 발표하며 에어컨 사용을 금지했다. 무더위에 마스크까지 써야 하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가? 논란이 일자 지난 7일 교육부는 창문을 3분의 1 이상 개방한 상태로 에어컨 가동이 가능하다고 보완했다. 자연스레 학창 시절의 여름이 떠오른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60명이 넘는 친구들과 찜통 같은 교실에서 여름을 보내야 했다. 그 더위와 졸음과 땀 냄새…. 비 오는 날의 후덥지근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불쾌한 기억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학교 난방비를 아끼느라 겨울방학을 늘렸고 대신 여름 수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냉난방이 되는 쾌적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따른 뿌듯한 결과이다. 한 반의 학생 수도 서른 명 남짓이라니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겠다. 그러나 발표에서 보듯 우리 냉방 방식 환경이 그리 건강하지 않음을 교육 당국이 인정한 셈이 됐다.

원칙적으로 냉방은 차갑게 만든 공기를 공기의 통로 즉 덕트를 통해 실내에 공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냉방은 대부분이 공기순환식이다. 즉, 실외기에서 차갑게 만든 냉매만 실내로 보내 공기를 차갑게 유지한다. 안에 갇힌 공기가 계속해서 머무는 방식이다. 공기순환식은 전기가 적게 들고 덕트가 필요 없으므로 공사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조용해서 일반적인 방식이 됐다. 하지만 목욕물을 갈지 않고 여러 사람이 계속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위생적이다. 물론 필터로 먼지 따위를 거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으로 산소가 줄고 이산화탄소가 늘어 정신이 맑을 수 없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있다면 무방비 배양접시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 공기순환식 냉방은 일부 선진국에서는 불법으로 규정돼 있기도 하다.

창문을 3분의 1이라도 개방하라는 보완책도 주먹구구식이다. 왜 하필 전부나 절반이 아닌 3분의 1일까? 교실마다 창문의 크기도 다르지 않은가? 근거는 없어 보인다. 자연 환기는 그날의 기압이나 바람 방향, 건물 구조에 따라 달라져서 창문을 활짝 열어도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차라리 작은 환풍기를 하나씩 달아주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교육부 대책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감염병을 가장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비과학적이다.

환기에 대해 무관심한 배경에는 우리의 둔감한 정서가 한몫한다. 서양 사람들과 비교하면 체취가 심하지 않다. 있다 하더라도 단일민족의 것으로 크게 거슬리지 않는 정도여서 환기가 필요하지 않았던 문화적 이유가 크다. 둘째로, 예전 집에는 ‘웃풍’이라고 부르는 자연 환기 시스템이 작동하기도 했다. 허술한 문틈, 벽틈 사이로 공기가 드나들었다. 단열을 중시하는 현대 건축의 실내는 이중, 삼중 창으로 둘러싸여서 이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셋째로 실내공기의 질보다는 효율을 앞세우는, 보건환경에 무지한 태도가 크다. 경제성을 우선시하고 내용보다는 겉모습을 중시했던 이제까지의 태도를 바이러스가 일깨우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코로나 감염 사태가 문명에 대한 자연의 역습이라는 견해는 근사한 수사이지만 공허하다. 외려 그간에 소홀히 하고 빠뜨렸던 문명의 구성품들을 꼼꼼히 점검해야 하는 일인지 모른다. 이제 적어도 환기만은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과거에 놓치고 있던 가치를 다시 가져오는 일이며, 미래에 다시 올지 모르는 바이러스에 대비하는 길이다.

오늘도 아파트와 학교 엘리베이터 안의 환풍기는 돌지 않고 있다. 어제 탄 택시도 환기 버튼은 눌려 있지 않았다. 얘기를 해봤지만, 가스가 많이 들고 바깥의 먼지가 들어와서 열지 않는다며 완강했다. 속으로만 외친다. 먼지는 필터가 거르고, 연료가 좀더 들더라도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요. 환기를 부탁해요~.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7435&code=11171426&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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